▲ 최재훈 여행작가

헛둘 헛둘!

사람이라고는 몇 보이지 않는 넓은 모래사장에서 동양인 3명이 벌써 30분째 삽질을 이어가고 있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땀을 비오듯 쏟으며 모래사장 한쪽을 사람 키의 반만큼은 족히 될 정도로 파헤치고 있다. 삽과 바구니를 든 다른 관광객들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구덩이 안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잘 돼 갑니까?”

“전혀요. 기미도 안 보여요.”

그랬다. 캠핑카를 타고 점심 무렵에 도착한 이곳 핫워터 비치에서 나와 일행은 온천을 파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곳 ‘핫워터 비치’는 모래사장을 조금만 파도 뜨거운 온천수가 스며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마다의 온천을 만들어 한가로이 온천욕을 즐기다 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안 되는 걸까? 결국 한 시간쯤 삽질을 하다 방전된 몸뚱아리를 질질 끌고 캠핑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외국인 관광객 두세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헛삽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래사장을 다 빠져나와 핫워터 비치 안내판을 다시 본 순간,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물때를 못 맞췄다. 핫워터 비치의 온천수는 밀물때를 맞춰야 만날 수 있는 놈이었다. 밀물에 바닷물이 모래바닥 아래 뜨거운 온천 지하수를 한껏 위쪽으로 밀어 올려주면 몇 번의 삽질만으로도 나만의 핫워터 비치를 만들 수 있었던 것. 들어가는 입구에 떡하니 상세한 설명과 밀물 때를 적어둔 시간표까지 있었는데 누구 하나 못보고 지나쳤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해변에서 헛삽질을 이어가고 있는 다른 관광객들의 허우적거림이 위안이 돼 준다.

“후훗! 우리만 바보는 아니었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그네들에게 가서 알려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흐흐. 이 얄팍함이란.

헛삽질에 지친 배를 라면으로 간단히 때우고 차를 몰아 북섬의 동북쪽에 툭 튀어 오른 코로만델 반도로 향한다. 코로만델 반도는 울창한 숲과 해안도로가 굽이굽이 어울린 북섬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덩치가 제법 있는 캠핑카를 끌고 굽은 길을 좌우로 꿀렁대며 달리려니 잔뜩 긴장된다. 게다가 이곳은 십수미터는 넘는 거대한 원목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덩치만큼의 속도로 쓩쓩 지나다니는 통에 더 정신이 없다. 잔뜩 긴장한 손은 핸들을 잡은 채 축축해졌지만, 그래도 경치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눈알을 바쁘게 굴려댄다.

가는 길목 길목마다 마련돼 있는 뷰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반도의 깊은 바다색을 한참씩 바라보는 것이 코로만델 해안도로 드라이브의 참맛이다. 코로만델 해안도로는 마치 우리네의 통영과 남해 쪽 어느 해안도로를 연상시킨다. 양식장과 작은 섬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빼면, 내리쬐는 햇볕이나 해안의 곡선, 검붉어 깊은 바다의 빛깔까지 닮아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게 되면 남해 투어도 꼭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한참을 구불거리며 달리다 도착한 곳은 케서드럴 코브. 하헤이 비치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위쪽은 이름 그대로 대성당처럼 웅장하고 아래는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 놓은 해안동굴이 신비로운 곳이다. 특히 이 해안동굴(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넓게 뚫린 바위 아래 틈이라고 해야 하려나)은 다른 차원, 다른 시간의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는 차원이동 통로 같은 느낌을 준다. 동굴 저편에는 조그만 모래해변이 아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변 앞에는 큰 바위 얼굴 하나가 덩그러니 박힌 채 뜨거운 바다의 태양을 온종일 받아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굴과 바위를 배경으로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제아무리 똥손이라도 웬만해서는 인생컷을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케서드럴 코브는 영화 <나니아 연대기>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이 난데없는 차원이동으로 도착해 폐허가 된 성을 발견하는 곳이 바로 이곳 케서드럴 코브였다. 영화가 소설만큼 흥행을 못한 탓에 이렇게 말을 해도 “뭐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잔잔한 파도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하자 해변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잡아끌어 검은 바다 속으로 당기는 듯한 느낌이랄까. 더없이 낭만적이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그런. 해가 완전히 져 차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동굴 이편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잰 발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캠핑카로 향한다. 비밀의 해변만큼이나 오고 가는 숲길도 짧은 트래킹 코스로 부족함이 없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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