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한국 사람에게 미역국은 매우 특별한 음식이다. 출산 후 산모에게 필수이며, 생일상을 아무리 잘 차려도 미역국이 빠지면 헛일이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어도 미역은 한국인의 먹거리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미역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명칭에 대해 알아보자.

제전마을의 미역은 상품성이 매우 높다. 수심이 얕아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어 질이 좋다. 크기도 가로 45센티미터, 세로 2미터35센티미터의 대각(장각)이다. 삼척의 미역이 보통 30센티미터인 것에 비하면 크기가 15배나 되고 가격은 20배인 15만원이나 된다.(2016년 4월18일자 울산매일)

위 기사에 나오는 ‘대각’과 ‘장각’은 줄기가 커다란 미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역은 크기에 따라 대각·중각·소각으로 나눈다. 지역마다 크기를 나누는 기준은 다르지만 대체로 대각은 1미터 이상, 중각은 80센티미터~1미터, 소각은 80센티미터 이하짜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에 소개한 제전마을의 미역은 대각 중에서도 무척 큰 편에 속한다고 하겠다.

미역 크기를 누가 언제부터 대각·중각·소각으로 분류했는지 모르겠으나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보니 한자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대각(大角): <건설> 너비가 30cm 이상인 네모진 재목.
소각(小角): <건설> 너비가 20cm 이하인 각재.

각재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에 ‘각(角)’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는 것에 비춰 미역 크기를 나타내는 말 역시 ‘大角’ ‘中角’ ‘小角’으로 표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국어사전에서 아래 낱말을 만났다.

새초미역: 장곽(長藿)보다 짧게 채를 지어 말린 미역. 대개 길이 70cm, 넓이 7cm 가량으로 자르는데 빛이 검고 품질이 좋다.

풀이에 ‘장곽(長藿)’이라는 말이 보인다. 찾아보니 표제어에 이런 낱말들이 보였다.

장곽(長藿): <식물> 넓고 길쭉한 미역.
중곽(中藿): 장곽(長藿)보다 짧게 채를 지어 말린 미역. =새초미역.

이 낱말들을 보면서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대각(장각)·중각·소각이라고 할 때의 각은 ‘곽(藿)’이라는 한자에서 온 게 분명했다. ‘곽(藿)’이라는 한자가 어려운 글자인 데다, ‘곽’보다는 ‘각’이 발음하기 편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한 추론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자의 본래 음이 발음하기 쉽게 변하는 경우는 꽤 많다. ‘삭월세(朔月貰)’가 ‘사글세’로 바뀐 게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은 언어 파괴 현상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대각미역’이라는 말의 어원이 밝혀졌다고 해서(아직은 내 추론이긴 하지만) 언중들이 활발히 쓰고 있는 말을 버리고 본래의 표기대로 사용하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 가능하지 않은 시도가 될 게 뻔하다. 지금 언중들이 쓰고 있는 말의 본래 형태가 어떠했는지를 따지고 연구하는 건 국어학자들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지금이라도 ‘대각미역’ ‘중각미역’ ‘소각미역’을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리고 어원을 밝혀 주면 될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다음과 같은 낱말을 보자.

감곽(甘藿): 갈조류 미역과의 한해살이 바닷말. =미역.
감곽냉탕(甘藿冷湯): 물에 씻은 미역을 잘게 뜯어, 갖은양념을 한 고기와 한데 무쳐서 볶은 것을 냉국에 넣고 초를 친 음식. =미역냉국.
감곽탕(甘藿湯): 미역을 넣어 끓인 국. =미역국.
곽탕(藿湯): 미역을 넣어 끓인 국. =미역국.
백반곽탕(白飯藿湯): 흰밥과 미역국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생일에 흔히 먹는 음식이다.

지금 실생활에서 저렇게 어려운 낱말들을 누가 쓰고 있는가. 국어사전에는 올라 있지만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말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기록에 남아 있는 말이므로 굳이 국어사전에서 뺄 필요는 없다. 다만 저런 낱말을 찾아서 실을 바에야 지금 쓰고 있는 말들을 찾고 정리해서 싣는 데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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