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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승리대법원 ‘법외노조 통보 취소 판결’과 노동부 ‘취소’에 대해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3일, 대법원은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했던 법외노조 통보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박근혜 정권에서 노동부는, 전교조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해직 교원 9명이 원고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따르지 않자 2013년 10월24일 전교조에게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했다. 그 뒤 전교조는 이러한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행정법원과 2심 서울고법에서 그 통보는 적법하다며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전교조의 패소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취소해서 전교조의 승리를 선고했다. 대법관 2명을 제외한, 압도적인 다수의견(10명)으로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했다고 판단한 것이니 전교조의 압도적 승리를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판결이 나온 다음날인 4일, 문재인 정부의 노동부는 “대법원 선고(2020. 9. 3.) 판결의 취지에 따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2013. 10. 24.)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교원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의 지위를 회복하게 돼 전교조의 승리는 확정됐다.

2. 돌이켜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내세워 시정명령·시정요구 등으로 노조 탄압 공세가 거세질 당시 규약 변경을 통해 그 공세를 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도 그런 궁리를 해서 돌아가지 않고 버텨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로 교섭 등 노조활동을 박탈당하는 것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과거 민주노조 설립에 있어서 해고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 조항이 있으면 관할 행정관청과 노동부는 그걸 문제 삼아 설립신고서 보완을 요구하거나 반려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럴 때면, 그 규약 조항을 삭제하고서 설립신고를 받아 왔다. 그걸 두고서 특별히 민주노조운동사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노동자의 노조설립을 간섭하는 권력의 행위를 비난했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해고자의 노조 가입에 관한 규약을 둘러싸고서 전개돼 왔던 이런 노조설립의 역사로 볼 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여겼다. 노조활동을 권력과 자본이 감히 빼앗을 수 없는 노동자의 자유라고 외쳐 왔던 나조차도 ‘어떨까’ 했던 것이니 말이다. 아마도 전교조 내부에서는 당시 권력의 탄압에 대응을 둘러싸고 치열할 논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와 선택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과 노동부 처분에 이르렀을 것이다. 권력의 공세에 ‘잔꾀’로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는 선택을 했던 것이고, 마침내 대법원은 그 전교조의 선택이 적법하다고 손을 들어줬다. 전교조는 4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전교조에게 ‘해고자를 내치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당·위법한 탄압에 만약 우리가 무릎 꿇었다면, 오늘과 같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교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헌법을 확인하는 판결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을 토로한 것일 게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3. 노동자가 단결해 활동하는 것은 ‘자유’다. 결코 권력과 자본 등 그 누가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받아주는 ‘권리’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다를 것이 없는, 노동자의 자유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에게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고, 노동자에게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사람으로서 보장되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법률로 계약으로 정하고 있어야 비로소 보장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결사의 자유로 사람이기에 당연히 자유로 보장되는 것이지 국가권력이 법률로 사용자 자본과의 계약으로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기에 자유로 보장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이 세상에서 자유를 제한할 때에 국가의 법률로 다른 사람과의 계약으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노동자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자유, 즉 단결의 자유는 국가가 법률로, 사용자와의 계약(혹은 취업규칙)으로 정해서 보장해 줘야 할 만큼 노동자에게 대단히 은혜적인 급부도 아니다. 고작해야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에게 무언가를 해 줘야 비로소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권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노조설립 허용이니 노조할 권리니 하며 노동자에게 엄청난 특혜라도 주는 것인 양 착각해 왔다. 노동자끼리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해서 교섭하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 파업 등을 하는 것을 두고서 특별한 혜택인 듯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이 나라의 법은 규정해서 관리해 왔다. 전교조에 노조법상 노조 아님을 통보하고, 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해서 노조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규제해 왔다. 자유로 바라본다면, 감히 국가가 설립신고제도를 통해 관리하는 법을 마련해 시행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의 자유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통해 노조 지위를 박탈하는 사단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노조법은 법외노조 통보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았는데도 시행령에서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한 것이라서 그 시행령 조항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것이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한 이유였다.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한 노조법 규정의 의미에 관해서도, 해고자까지도 여기서 근로자 아닌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등에 관해서도 이번 전교조 사건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에서는 읽을 수가 없다. 이에 따르면, 법률인 노조법이 직접 법외노조 통보에 관한 규정하거나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었다면 위와 같이 압도적 다수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위법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하는 걸 보지 못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장차 국회가 노조법에 이를 규정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이번 전교조의 승리가 이 나라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단결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5.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자 곧바로 노동부는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원심 판결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전교조는 법내노조로 지위를 회복했다.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한 취소에 당신은 놀랐을지 모른다. 어쩌면 감격해서 노동부의 신속한 행정처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제야 한 것이냐고 나는 묻고 싶다. 2013년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은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노동부 스스로 판단해서 한 것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등에 대한 노조 탄압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각종 국정농단 사건 외에도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농단 사건 등을 통해 밝혀졌다. 그렇다면, 노동부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바로 잡았어야 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했어야 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하는 것이라면, 이 정부가 적폐청산 대상으로 여겨 온 박근혜 정권조차도 그러 했을 것이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에 따르지 않겠다고는 감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결사의 자유 등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약하고, 실직자 등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공약했던 정부라면, 국회의 입법이나 사법부의 판결을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했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취소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노동부는 취소하지 않았던 것이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6. 생각해 보면, 자유는 그 누가 주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결의 자유도 그랬다. 노동운동사에서 노조를 조직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파업하는 노동자의 자유는 국가가 법률로 보장해 줬기에 비로소 보장됐던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법은 그 실제를 확인했을 뿐이다.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걸 사용자가 계약으로 시비하고 국가가 법으로 규제하다가 노동자의 투쟁으로 법적 규제를 풀고 계약위반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됐던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 활동이라는 실제가 있고 나서 그걸 법적인 권리로 취급하는 규범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자유처럼 노동자에게 단결의 자유도 그러했다. 이러한 것임에도 우리의 경우는 이러하지 않았다. 국가가 법으로 보장해 주고 허용해 줘야 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무엇 때문일까. 기업별로 가둔 국가의 법을 넘지 못하고 노조활동을 사업장 내 임단투로 전개해 왔던 탓일까. 자유로 알지 못하고 법으로 보장해 줘야 할 무엇으로 여겨 국가권력에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쳐 와서일까.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을지라도, 노동자의 실제 행동 없이 법적으로 자유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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