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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단상
▲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는 말은 지극히 상투적이다.

짧아진 낮의 길이와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냉기를 머금고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은 그저 자연의 변화일 뿐이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변화를 가지고 글을 시작하는 것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혹독한 시간이었던 이 여름을 다시 떠올리면 오는 가을이 무척이나 반갑다.

역대급 장마를 겪고 난 뒤, 교회에서 시작한 코로나19 확산과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그리고 연이어 온 태풍까지. 2020년 여름은 사상 최악의 계절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듯 싶다.

축축하고 눅눅하며 후덥지근한 시간을 국민은 마스크를 쓰고 보내야 했다. 감염병은 어디서 어떻게 옮겨질지 몰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버티고 견뎌야 했다.

한국노총을 비롯해 노동계 역시 수많은 행사를 취소하거나 약식으로 진행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이자,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름 국민이 참아내야 할 대상은 장마와 바이러스, 태풍만이 아니었다.

지난 2주 동안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행위는 공동체에 대한 공격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의 건강이 위기에 놓여 있는 시점에 환자를 볼모로 삼은 행위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의사들은 자신의 행동이 밥그릇 지키기와 무관하다고 강변하지만, ‘바람으로 날씨의 변화를 느끼는 것’만큼 상투적이다. 반면에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가 ‘공공의대 의사’보다 낫다는 주장을 통해 스스로 ‘모자람’을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새삼스럽다.

그런 면에서 정부·여당이 의사들과 만들어 낸 합의문은 무척이나 유감스럽다.

합의문에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논의를 중단한다”고 돼 있다. 또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을 중심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코로나19의 안정화 기준이 생활 속 거리 두기로의 복귀인지, 코로나19 종식인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이 합의가 지난 7월28일 노사정이 약속한 내용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노사정 협약에는 “전문 보건인력을 비롯한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제도적 개선의 추진”과 “감염병 대응과 지역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공공병원을 늘릴 것”을 명시했다.

노사 대표에게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약속해 놓고, 의사들에게는 감염병이 안정화되면 시행하겠다니 이건 무슨 궤변인가.

게다가 이 논의를 불법 진료 거부행위를 한 의사들과 하겠다고 하니 이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는 것 아닌가.

국민을 볼모로 한 의사들이나, 집단이기주의에 무릎 꿇은 정부·여당 모두 국민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자연재해에 인재까지. 그러고 보면 올 여름은 최악의 계절로 기억되느니 차라리 잊혀진 계절이 되는 것이 나을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람은 불고 해는 짧아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새로운 계절이 찾아온다.

새로운 계절은 참고 견디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선선한 바람이 됐으면 좋겠다.

가을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흐린 하늘에 편지를 쓰다 잊혀진 꿈들을 다시 만나는 계절이 아니던가. 이렇게 또 어줍지 않은 희망을 꿈꾸며 살아간다. 상투적이며 새삼스럽지 않은 국민의 하루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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