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이 글의 제목은 칼 마르크스의 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을 차용한 것이다. 이 저작은 1848년 2월 혁명과 그 이후 부르주아계급의 배반과 반혁명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이 저작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에서의 내전> 두 저작과 합쳐서 ‘프랑스혁명 3부작’이라고 불리는 고전이다.

최근 미국 사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마치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급진적 민주주의 혁명이 타오르던 시대가 재연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아직 미국에서 프랑스부터 시작해 유럽으로 확대했던 1848년 2월 혁명 같은 봉기나 혁명이 곧바로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계급모순이 첨예화하고 계급투쟁이 격화하다 보면 불현듯 일어나는 것이 혁명 아닌가.

지난 9월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급거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를 방문했다. 이곳은 8월23일 세 아들과 부인이 보는 앞에서 흑인 제이콥 블레이크가 경찰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도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항의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8월26일 일리노이주에서 온 17세의 우익 청년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두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크게 부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항의시위는 더욱 격화했고, 이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주 방위군이 투입됐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현지를 방문해 무고한 시민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경찰과 우익 살인범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들에 맞서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테러 세력” “폭도”라고 비난했다. 주방위군 임시 지휘센터를 찾아 시위진압을 위해 투입된 군인들을 격려했다. 경찰에 대해서는 “정치적 폭력을 멈추려면 급진적 이데올로기와 맞서야 한다”며 고무했다. 경찰 총격으로 부상 당한 블레이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 장면은 현재 미국 국가와 사회가 얼마나 어떻게 계급적으로 깊이 분열돼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게 흑백 분열이지 어째서 계급 분열이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대립·투쟁에는 흑인만이 아니라 히스패닉도 대거 가담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빈부 양극화와 파쇼통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세력, 급진적 민주주의 세력이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간 차별·대립은 계급 간 분열·대립과 뒤엉켜 있다. 미국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이 대립의 주역이 아니다. 단지 정파적 이익을 타산하며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투쟁은 100여일 넘게 계속되는 점에서 흔히 있는 인종차별 반대 투쟁과 구별된다. 이번 투쟁의 사이클은 5월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들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밟아 죽게 한 사건으로 촉발됐다. 그 대중투쟁의 파장이 전국에 걸쳐 100일씩이나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오바마 정권 당시인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한 흑인청년이 총격을 받아 살해된 사건이 있었고, 이에 항의해 격렬한 폭동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흑인의 생명도 귀중하다’는 캠페인이 생겨났다. 이번 투쟁은 그때만큼이나 전국적이고 끈질기게 전개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번 시위에서 시위대가 외치는 슬로건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행동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있고 나서 인종차별과 국가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유지하겠다던 남부측 장군과 대통령의 동상이 다수 훼손됐다. 이들은 흑인지배와 차별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니까 그들의 동상이 훼손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런데 콜럼버스 동상도 줄줄이 수난을 겪었다. 보스턴에서는 동상의 목이 잘리고, 버지니아에서는 동상이 붉은 페인트가 칠해진 후 끌어내려져서 불태워지고 호수에 내던져졌다. 볼티모어에서는 동상이 끌어내려진 뒤 인근 바다에 빠졌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콜럼버스 동상이 파괴됐다. 콜럼버스는 잘 알다시피 서구 백인 중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자다. 그가 아메리카에 온 뒤 많은 원주민들이 학살되고 땅을 빼앗겼으며,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보호구역’에 갇혀 맥없이 죽어가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지금도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토지 수탈이 계속되고 있다. 또 어쩔 수 없이 혼혈이 된 원주민 후예들은 백인 지배의 대농장에서 노예처럼 살았고, 그 사슬에서 벗어난 지금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번 콜럼버스 동상 파괴는 이런 아메리카 대륙의 잔혹한 식민주의 역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68년 이래 지속된 흑인차별 반대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투쟁하는 민중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공식 역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콜럼버스를 인종청소(제노사이드) 범죄자로 규정한다. 식민주의는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자본주의 성립을 위한 원시축적이었다. 이 원시축적이 없었으면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생길 수 없었고 서구가 제국주의로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착취할 수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제기는 근본적이다.

이 시위대는 7월4일 미 독립기념일에 도처에서 성조기를 불태웠다. 심지어 트럼프가 기념 연설을 하고 행진을 하던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서 성조기를 불태웠다. 이들은 이런 소각 시위를 하면서 “미국은 한 번도 위대한 적이 없었다(America was never Great)”고 외쳤다. 미국 지배계급이 그동안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선전하고 세뇌해 왔는데 그 거짓 이데올로기에 대해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인종청소·인종차별과 착취·억압으로 지센 나라였다는 것을 폭로·고발하고 있다. 혁명은 몰라도 계급투쟁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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