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워낙 정치가 국민 삶과 동떨어지다 보니 말만 잘해도 좋은 정치인이 된다. 그 말을 실현 가능한 법과 제도로 만드는 건 둘째다.

지난해 박정희 대통령 40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한 정치인은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습니다. 당신의 업적,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발언 당사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극우 정치권으로 넘어간 사람이 많지만 그처럼 참혹하게 앞뒤 분간 없이 내뱉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그의 말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다. 35년 전 심상정과 함께 삼민주의를 내걸고 민중혁명을 주창했던 김문수는 그렇게 메시지를 잃어버렸다.

이처럼 워낙 허튼소리 하는 정치인이 많다 보니, 이제는 약간의 시대정신이라도 담아내기만 하면 국민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의 8할이 메시지다. 메시지만 잘 내놓으면 이기는 정치가 가능하다.

집권 여당의 이낙연 새 당대표가 당내 주요 보직을 임명했다. 언론인 출신답게 MBC 출신 박광온 의원과 취약지역인 영남권을 겨냥해 부산 출신 한정애 정책위의장, 최인호 수석대변인을 앉혔다. 뭐니 뭐니 해도 고려대 3학년생인 박성민 청년대변인을 청년 몫의 최고위원에 임명한 게 최고의 메시지다.

이에 화답하듯 청와대도 지난 2일 임세은 청년소통정책관을 부대변인에 임명했다. 하지만 우리 나이로 마흔에 두 곳의 증권사와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 정도의 경력이라 감동은 덜했다.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이 청년들 주식투자 정책 만드는 자리는 아니다.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3일자 경향신문 6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당의 청년정책이 일자리와 주거에 치우쳐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청년의) 노동과 생활 등 일상으로 정책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일단은 메시지 발표엔 성공했다. 봉숭아학당 수준의 발언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이런 상식마저 참신하다.

그러나 메시지가 모두는 아니다.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 말이라면 실현 가능해야 한다. 젊음이 그 자체로 무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경향신문처럼 여당의 청년 최고위원 발언을 비틀지 않고 받아주는 언론도 많지 않다. 3일자 극우신문들은 일제히 박 최고위원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영끌 발언에 대항마로 사용했다. 동아일보는 3일 5면에 “여당 20대 최고위원 ‘김현미 영끌 발언, 청년에 상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최고위원을 여권 내부 싸움의 불쏘시개로 썼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무리 선한 의지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의혹을 검찰이 빨리 수사해 매듭지어 달라고 발언해도 조선일보는 3일 5면에 “여당 의원도 ‘병역문제는 국민의 역린, 검찰이 빨리 정리를’”이라는 제목으로 여당 내부 균열로만 활용한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최대 우군은 입만 열었다 하면 막말을 쏟아내는 극우세력과 이들 세력을 배후조종하는 극우매체들이다. 반대로 최대의 적은 상식을 뛰어넘는 극렬 친문세력이다.

아무리 선한 메시지라도 메시지만 내놓고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양극단의 세력에게 좋은 먹이만 제공해 줄 뿐이다. 이런 양자 대결을 즐기는 관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면 메시지 정치의 유혹부터 떨쳐 내시라.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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