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화창한 날이 도대체 없다.

기후위기 징후인지 50일이 넘는 기간 장맛비가 내렸다. 비구름이 제대로 걷히기도 전에 태풍이 몰려오고, 바이러스는 다시 창궐 기미를 보인다. 더구나 국민 건강상 중차대한 위기는 바이러스 창궐만이 아닌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고 국민에게 제발 그 자리에 머물러 달라는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한 의사들의 호소는 진료 현장을 뛰쳐나와 국가 의료체계 위기를 설파하는 의사들의 주장과 뒤섞이고 있다. 우중충하고 음울한 시절 국민의 불안 혹은 불쾌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래도 우리 삶은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문 앞까지 도달하며, 급체로 찾아갈 응급실이 문을 닫았을지언정 배달음식은 식기 전에 식탁에 오른다. 연로하거나 아픈 가족에게 영상통화로만 안부를 전하지만 그 곁에 돌봄노동자들이 있다.

올 3월 코로나19 감염이 미주와 유럽을 강타하고 해당 국가들이 이동 제한(록다운)과 함께 생산중단(셧다운)에 들어간 바 있다. 이동이 중단되고 공장이 멈춰야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지탱해주는 이들이 누구이며, 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대우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감염 전파 위험을 줄이면서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재택근무로 전환하거나 멈춰도 되는(non-essential) 노동과 반드시 수행돼야 할(essential) 노동을 구분해야 했고,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s)는 위험을 감내하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기존에 필수 노동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팬데믹 시대에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들 노동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실업률이 치솟고 실업보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일터로 나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이 통상의 이동이 멈춘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던지 돌아보는 기사와 논문들이 등장한다.

저명한 의학저널(The Lancet, 2020년 5월23일자)에서는 ‘COVID-19 대유행 시기의 필수 노동자들의 역경’이라는 편집자 사설을 통해 보건의료 노동자·병원 직원·보육교사·식료품 점원·배달원·운수노동자 등 자신과 가족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대책 강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건강 보호가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보호한다고 설파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도 ‘필수’ 노동이 사회적 필요에 비해 얼마나 저평가됐는지를 분석한다. 필수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에 대해 진입장벽이 낮아서 잠재노동력 공급이 높고, 고임금 직종에 비해 사회적 파급효과가 높지 않고, 효용성과 관계없이 희소성에 의해 임금의 차이가 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경쟁을 통해 살아 남은 기업들의 힘이 강한데 반해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 즉 ‘권력 격차’에 기반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홍성훈, 코로나19의 영향과 미국노동조합의 대응, 국제노동브리프 2020년 5월호).

한국 사회에서 필수 노동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 같은 이름으로 쟁의권을 포함한 노동권 제한과 관련된 부분이 강조돼 왔다. 신종 감염병 시대에 필수 노동에 대한 고민은 달라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의료인의 과로와 소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망, 배달 노동자 사고사망 증가, 돌봄노동자의 감염,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위험 노출과 감염이 연일 보도된 바 있다.

더불어 열악한 노동조건에 비해 부실한 상병수당·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알려지고 있다. 팬데믹 시대에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노동과, 위험을 감수하며 그것을 수행하는 노동자에 대한 지원책과 권리, 안전대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셧다운 조치시에도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노동을 강제하고 자본의 이윤추구를 용인하는 도구로 ‘필수 노동’ 개념이 이용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필수 노동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얻어 내기까지의 과정은 ‘권력 격차’를 극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최근 서울시 성동구 의회에서 ‘필수 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가결됐다. 필수 노동자를 근기법상 근로자로 제한해 조례가 지원하고자 하는 필수 대면업무에 종사하는 많은 노동자가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점은 큰 한계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자는 누구인지 살피고, 그들에 대한 제도적 지지와 지원이 필요함을 상기시키는 국내 최초 사례로 의미가 크다.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장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보호 및 지원’을 넘어서 필수 노동자들이 사회 전체의 일상성과 안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이윤을 위해 위험을 강제받지 않도록, 위험수당이 아닌 안전할 권리로 진전하기를 기원한다. 어떤 노동은 필수이고 어떤 노동은 그렇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자 노동으로 남기 보다는 필수 노동으로 드러나는 것도 진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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