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부천물류센터(신선물류센터 2공장)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 사회에 숙제를 남겼다. 고용형태에 따라 감염위험도 달라진다는 건강격차 문제다. 부조리함은 해소되기는커녕 꼬리를 물고 다른 부조리를 만든다. 물류센터는 정상가동했지만 노동자들은 사과를 받지도 못했고, 생계곤란을 겪는가 하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법률가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집단감염 피해자를 지원하며 물류산업 선두기업 쿠팡을 주목하는 까닭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여섯 차례에 걸쳐 쿠팡 피해자 지원 활동가들의 글을 싣는다.<편집자>


코로나19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시장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 신희주 가톨릭대 교수(민교협)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나타난 새로운 4개의 계급 구분을 소개했다. 그중 팬데믹 상황에서도 공공·보건 서비스, 돌봄, 배달, 청소 같은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적절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필수 노동자들(The Essentials)’, 그리고 서비스업·제조업 노동자 중 감염병 상황으로 무급휴가 중이거나 실직한 ‘무급 노동자(The Unpaid)’에 주목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필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증가와 감염의 위험에, 무급 노동자들은 노동시간단축·실직 등에 노출됐다.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공통적으로 이번 재난 상황에서 코로나19 충격을 가장 크게 경험했다.

쿠팡 부천물류센터 집단 감염사태는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었던 ‘필수 노동자’의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다. 쿠팡은 기존의 전자상거래 업체들과는 달리 직접고용 구조를 내세워 공격적 마케팅을 했지만, 이번 코로나19 감염사태로 그 민낯이 드러났다. 소수 정규직을 제외하면 배송·입출고 작업·창고 관리 등의 업무는 대부분 특수고용직·계약직·일용직 노동자들이 수행했다.

과로로 쓰러지거나 실직에 내몰리거나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늘어난 사회적 요구 때문에 급격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증가를 경험했다. 충분한 인력증원 없는 업무증가는 택배노동자 산업재해와 과로사로 이어졌다. 2020년 상반기 1.5배가량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해야 했던 택배노동자 산재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43%나 증가했고,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업무 관련 재해에 노출돼 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3월 이후, 거의 모든 산업에서 무급휴직·희망퇴직·권고사직과 같은 고용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급 노동자’ 상태로 내몰렸다. 직장갑질119의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2차 조사 보고서(올해 6월)’에 의하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노동시간단축을 경험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2.4배, 실직은 6.6배, 소득감소는 2.8배에 달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양산된 ‘무급 노동자’ 또한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일하는 현장에서도 안전할 권리가 박탈돼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 특히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산재는 늘 있어 왔다. 코로나19 확산은 재해에 노출되기 쉬운 열악한 노동환경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기폭제가 된 것뿐이다.

8월18일에 있었던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물류센터 노동환경은 노동자들이 왜 감염병에 취약했는지 잘 보여준다. 평소 업무에 필수적인 물품을 공동사용하면서도 위생관리에 소홀했다.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도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밀집 환경을 개선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음에도 그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그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 것이다.

사회적 보호 마련, 지금 당장!

이런 상황에도 실업에 대비한 우리나라 소득지원제도는 고용보험제의 실업급여가 유일하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은 전체 취업자 중 49.4%뿐이다.

상병수당과 법적 유급병가제도 부재도 문제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아프면 집에서 3~4일 쉬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처럼 불안정한 노동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수칙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아플 때 쉬어도 일할 때의 소득이 보장되고, 쉬고 난 뒤 직장에 복귀해도 계약 종료로 실직 위험부담이 없다면 가능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병수당과 법정 유급병가가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뿐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의 사회·경제적 충격과 비교되는 97~98년 경제위기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가장 큰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은 취업자 중 가장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실직 위협 속에서 살며, 죽도록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코로나19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성장의 과실만 즐겨 온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 위기상황은 그들에게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반복될 감염병 재난 속에서 안전한 삶을 살아갈 권리는 이제 필수적이고 보편적 인간의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더욱 증가할 취약 노동계층 사회적 보호를 위해 법적·실질적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실현하고 상병수당과 법적 유급병가제를 도입하는 조치는 한시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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