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걸 무척 꺼린다. 자신들이 세웠으니 경영에 대한 모든 결정도 자신들이 내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기업을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는커녕 전문경영인 제도의 도입마저 꺼리는 상황인지라 경영학에 나오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같은 개념이 정착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셈이다. 그러다 보니 족벌경영이니 세습경영이니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아래와 같은 낱말은 그냥 사전 안에만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영참가(經營參加):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 기업 경영에 관한 여러 문제의 토의와 결정에 참여하는 기업 경영 방식. 기업 경영의 민주적 방식으로 관리 참가, 분배 참가, 자본 참가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노동자들이 경영 참가를 요구 사항으로 내걸고 파업을 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경영권을 침해하는 불법 파업으로 몰릴 게 뻔하다.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게 서양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나온 아래 용어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공동결정법(共同決定法): 기업의 감사 회의에 노동자 측의 감사를 사용자 측의 감사와 같은 수로 참여시키고 투표권을 행사하게 보장한 법률.

분류 항목이 ‘법률’로 되어 있는데, 한국에 정말로 이런 법률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사이트 ‘우리말샘’에 비슷한 용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공동의사결정법(共同意思決定法): 기업 측 대표와 종업원 대표가 동수로 참여하는 감사회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 1952년에 독일의 한 기업에서 만든 방법이다.

여기에는 ‘독일의 한 기업에서 만든 방법’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역시나 우리나라에 이런 법률이나 제도가 존재할 리 없다는 걸 씁쓸한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도입했다고 하는데, 그 후 1976년에 아예 법으로 제정을 했으며, 그런 영향을 받아 오스트리아·덴마크·네덜란드 등에서도 같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공동결정제도 혹은 공동의사결정제도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비록 늦은 걸음이긴 하지만 한국도 이와 비슷한 형식의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으며, 일부에서 구체적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 서울시의회에서 의미 있는 조례 개정이 이루어졌다. 본보에 실렸던 다음 기사를 보자.

이번에 공포되는 서울특별시 노동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에서는 ‘노동자이사제’ 명칭이 ‘노동이사제’로 변경된다. 이 조례명은 2016년 ‘근로자이사제’로 출발했으나 ‘노동자이사제’로 한 번 개정된 후 4년 만에 ‘노동이사제’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2020년 7월16일자 매일노동뉴스)

노동이사제는 현재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적용되고 있다. 근로자라는 말을 버리고 노동자와 노동이라는 이름을 찾았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서울시에 이어 경기도에서도 2018년에 노동이사제 운영에 대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용어 하나 더 살펴보기로 하자.

산업평의회(産業評議會):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자본가와 노동자 대표가 만나, 노동 및 산업에 관련된 문제를 협의하는 노사 협조 기관.

이런 기관이 있다는 얘기 역시 들어보지 못했으며, 검색을 해봐도 거의 나오지 않는 기관명이다. 아마도 외국에 있는 기관 이름을 번역한 것일 텐데, 뜻풀이가 정확한 건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신문 기사에 드물게 ‘산업평의회’라는 용어가 나오기는 한다.

IBM을 포함, 미국의 컴퓨터 반도체 소프트웨어 주요 생산업체들로 구성된 정보기술산업평의회는…(1995년 2월20일 자 매일경제)

미(美)·일(日) 원자산업평의회(原子産業評議會) 공동 주최로 개최되는 ….(1957년 5월13일 자 동아일보)

두 기사를 보더라도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풀이와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기관 이름을 국어사전 표제어로 올린 건 당황스럽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협의할 수 있는 기관이 언젠가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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