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예수는 세리(稅吏)를 왜 그리 미워했을까. 특히 신약 성경엔 많은 세리가 등장하지만 대부분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다.

당시 유대인이 살던 곳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 제국은 갖가지 세금을 만들어 유대인을 수탈했다. 인두세·토지세·시장세·물품세는 기본이고 악명 높은 통행세까지 쓸어 갔다. 유대인들은 총독의 위임을 받아 세금을 걷으며 동족을 수탈했던 세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지주보다 마름을 더 미워한 것처럼.

세리는 임명 방식부터 비리에 물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각 지역 세관장들은 예상되는 세금을 로마 총독에게 선지불한 뒤에야 임명됐다. 세관장들은 그 돈보다 더 많이 거둬 들이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세관장이 세리를 뽑아 세금을 거뒀으니, 세리도 무리한 징수에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성경은 세리를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자주 묘사했다.

지난 19일 새 국세청장 청문회가 열렸다.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차명투자 의혹을 샀다. 여기서 그는 기염을 토했다. 의원들은 그에게 위장전입 여부를 캐물었다.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배우자·딸이 2011년 무렵 1년2개월 동안 처제 집에 전입해 얹혀살았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야당 의원들은 당시 김 후보자가 무주택자 청약 가점을 얻으려고 아파트를 처제 명의로 차명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김 후보자는 차명 매입을 부인하면서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그렇게 많이 산다”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 답변에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은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딸이 대학에 갔다고 근처에 방 3개짜리 전세를 얻어 주는 게 서민이냐”고 힐난했다. 질문했던 유 의원은 2015년 차관급인 통계청장에 임명돼 형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박근혜 정부 최초로 형제 장·차관을 지냈다. 유 의원이 내놓은 재산 공개 내역엔 서초구 잠원로에 9억6천만원짜리와 세종시에 4억1천만원짜리 아파트 2채가 있었다.

이날 청문회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등장한 김 후보자와 가족 친지들의 주소지는 강남구 역삼동, 송파구 잠실아파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이다. 한결같이 강남 3구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여러 신문이 청문회 소식을 다뤘다.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 압권이었다. “사돈까지 5명이 한집? ‘서민들 그렇게 살아’”(8월20일 8면). 한겨레신문은 이날 8면에 “김대지 ‘위장전입보다는 학구 위반 … 송구스럽다’”는 제목으로, 조선일보는 6면에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 위장전입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 이틀 뒤인 21일 국세청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는 공평한 국세 행정을 확립해야 한다”며 “국가적 위기를 틈탄 민생 침해 탈세, 반사회적 역외 탈세, 부동산 거래 과정의 변칙적 탈세에 대해서는 무관용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8월22일 25면에 “김대지 국세청장 취임 ‘부동산 탈세 무관용… 은닉재산 철저 추적’”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웃찾사와 개콘이 왜 폐지됐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국세청은 국가정보원·검찰·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 중 하나다. 같은 차관급이라도 통계청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 있는 기관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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