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 집행위원장

“용역 전환이 불가피한 결정이라 표현했는데, 공동주택관리법이 용역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인가요?”

2017년 압구정현대아파트에서 아파트경비원 전원이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전환될 위기에 처할 당시 한 입주민이 입주자대표회의에 제기한 의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3일, 압구정현대아파트 경비원 100명 정리해고 사건에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65조6항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에 따른 경비업무 관리 운영상의 어려움, 대표자회의의 경영관리 전문성 부족과 관리능력 결여, 최저임금 인상과 퇴직금 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부당해고라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소는 결국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나는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

첫째, 최저임금 인상과 퇴직금 부담증가를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로 삼은 것, 그 자체로 큰 문제다. 최저임금이 무엇인가? 노동자들이 노동력 제공에 따라 마땅히 대가로 받아야 할 임금의 최저선이다. 아무리 2017년 최저임금이 기대보다 많이 상승했다 해도 이는 그 전에 최저임금이 워낙 낮은 것에 따른 회복일 뿐이다. 이를 정리해고의 이유로 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심지어 대표자회의측은 단지별 공고문에서 ‘용역관리로 전환할 경우 임금인상에 따른 이전년도 퇴직적립금 추가충당 부담이 없어진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명시했다. 우리 사회의 아파트관리 용역업체의 특성상 기껏해야 1~2년 계약이 전부인 상황에서 경비노동자들의 퇴직금이 차곡차곡 쌓이는 금전적 이익의 사용자 부담조차 거부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전가해 손해는 노동자들만 보라는 것 아닌가.

둘째, 공동주택관리법 65조6항을 이유로 주차대행업무를 경비원에게 지시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과 대표자회의의 전문성 부족, 관리능력 결여 때문에 위탁관리로 전환한다는 이유도 꽤나 심각하다. 물론 현재도 경비업법상 아파트경비원들에게는 경비업무 외 부가업무를 지시할 수 없다. 다만 경비업법과 현실이 맞지 않는 것을 해소하고자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마련해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현실화해 일정 정도 부가업무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감시단속적 규정의 적용 제외가 예상된다. 전근대적 24시간 격일제근무가 점차 사라지고 대안모델이 개발·적용되면 경비원들의 직무와 처우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낙엽 쓸기, 주차관리, 분리수거 같은 부가업무들을 아파트경비원들이 수행할 것이고 근무형태는 다른 형태의 교대제가 도입돼, 대표자회의 입장에서는 더 세부적인 업무지시와 직무기술 및 근로체계 변경에 따른 잘 짜인 노무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 속에 나온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대표자회의에 향후 달라지는 아파트 노무현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위탁관리·간접고용으로 전환하기 좋은 핑계거리만 제공해 준 셈이다. 어째서 1심처럼 대표자회의가 노무관리 자문을 받거나 스스로 공부해서 경비원들을 채용·관리하는 방법은 고려되지 않은 것인가.

한국의 아파트현장에서 용역업체란 무슨 의미일까. 제대로 된 관리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채 마땅히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비원들이 받아야 할 보상 중 일부를 일반관리비와 이윤 등으로 중간에 취한 뒤, 1~2년 후 또 다른 업체로 교체되기를 반복한다. 지금도 대다수 아파트 관리소장들과 경비원들은 용역업체의 관리 소홀 속에 입주민 민원을 처리하느라 격무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수십, 수백 개의 아파트단지와 계약해 관리하는 위탁관리업체들의 중간관리자를, 일선의 아파트 관리소장조차 몇 번 만나보지 못했다는 하소연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쏟아지는 민원을 관리소장 혼자 감당하지 못하니 모든 책임을 경비원에게 돌리고, 가장 약자인 경비원만 속앓이를 하다 3개월에 한 번씩 갈려 나가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이자, 80% 이상 위탁관리 중인 한국의 아파트 노동현장이다. 이쯤 되면, 관리소장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관리소장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대법원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대법관이라면, 현장의 문제도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 판단에 향후 아파트경비노동자들의 처우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더 나아지지는 못할지언정 악화시킬 순 없지 않나. <임계장 이야기>라는 소소한 경비원의 일기장과 같았던 한 권의 책이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 속 경비아저씨에게 더 신경 쓰지 못하고 잘 몰랐던 미안함 때문이리라. 그 미안함이 하루라도 빨리 끝날 수 있게 상식적인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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