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보험설계사노조

#. “술만 마시면 네 생각이 난다, 집 앞으로 갈 테니 나와라. 보고 싶다.” “용돈 주는 애인 소개해 줄까.” “몇 년 후에 지점을 너에게 줄 테니 나랑 사귀자.”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랑 결혼 할거냐, 나랑 사귀어 볼래?”

지난해 경남 창원의 한 독립보험대리점(GA) 여성 보험설계사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보험대리점을 운영하는 대표가 여성 지점장을 비롯한 보험설계사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성추행했다. 일 때문에 할 얘기가 있으니 나오라고 불러낸 뒤 엉덩이를 만지는 일도 있었다. 견디다 못한 지점장 ㄱ씨는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지난 2018년 또 다른 GA는 사업단을 새로 만들면서 보험설계사를 대거 모집했다. “홍콩 여행을 보내 준다. 수수료를 더 준다”고 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GA 사업단장은 개소식 비용을 보험설계사에게 나눠 부담하도록 하고, 운영비 지급이 안 된다며 사무실 비품도 보험설계사가 마련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소식 비용뿐만 아니라 매월 사무실 운영비용을 GA본사에서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노동계에 따르면 보험업계의 ‘대세’를 형성한 GA에서 보험설계사에 대한 갑질이 횡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보험사와 비교해 내부 통제가 약하고, 보험 판매만을 대리하는 특성상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에서 제한이 있어 이런 피해가 방치된다는 지적이다.

GA는 보험상품 제작이나 다른 여신업을 하지 않고 다양한 보험사 상품 판매를 대리하는 역할을 한다. 고객과 직접 만나는 유통채널인 셈이다. 개별 보험사도 판매조직을 두고 있지만, GA는 한 보험사가 아니라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취급하면서 비교·분석할 수 있어 차츰 보험업계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GA는 중간 관리자 없이 보험설계사가 GA대표 혹은 지점장과 직접 연결돼 성과 압박을 받는다는 점에서 내부 통제가 더욱 취약하다. 게다가 GA대표나 지점장은 GA 소속 보험설계사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더 받을 수 있는 구조로 계약을 맺어 성과압박이 심하다. 한 보험설계사는 “보다 자유로운 영업환경과 다양한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 등으로 보험사에서 GA로 이직한 보험설계사가 많은데 오히려 실적 압박이 강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GA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모호한 것도 이 같은 문제를 부추긴다. 보험사는 보험상품을 만들고 그 밖에 다른 금융업무를 하다 보니 보험업법상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에 놓여 있다. 그러나 GA는 다른 여신업무를 하지 않고 오로지 상품 판매만 하는 조직이라 금감원이 들여다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품판매 과정에서 고객과 발생한 문제가 있다면 영업분야 관리감독이 가능하겠으나 GA 내부의 갑질이나 성과압박 등은 직접 들여다볼 권한이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엔 GA에서 발생한 갑질 관련 분쟁이 크게 늘었다는 게 노동계 분석이다.

오세중 보험설계사노조 위원장은 “최근 들어 노조에 접수되는 민원은 거의 모두 GA와 관련한 것”이라며 “부당해촉이나 과도한 업무지시, 해촉 뒤 수수료 환수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오 위원장은 “기존 보험사보다 관리자들이 받는 영업 압박이 강하고, 이들이 가진 권한도 견제가 이뤄지지 않아 갑질이 더 횡행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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