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월 경북 구미 반도체회사 KEC에서 창사 5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생산직 노동자 2명이 S4 등급으로 승급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9월 남녀 간 임금·승진 차별을 해소하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하라는 시정권고를 회사가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승급 대상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던 금속노조 KEC지회가 아닌 교섭대표노조인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었다. 성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문제를 제기한 KEC지회는 회사의 노조 차별로 인해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민주노총이 2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연 ‘차별금지법 노동자에게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황미진 KEC지회장이 전한 사례다. 황 지회장은 “남녀차별이 입증됐지만 오히려 (회사가) 노조 간 차별로 악용한 사례”라며 “실효성 있고 강제력 있는 시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별 법령상 차별금지 범위·사유 달라
“직접차별뿐만 아니라 간접차별도 포함돼야”


노동계에서 일터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동현장 곳곳에 상존하는 차별이 임금차별 등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터에서의 차별은 노동자의 경제적 피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KEC지회에 따르면 남성 신규 입사자는 J2등급부터 적용받지만 여성 신규 입사자는 J1부터 적용받는다. 근속 26년차 입사 동기 38명 가운데 남성 32명은 모두 S4 등급 이상으로 승격했지만 여성 6명은 모두 J3에 머물러 있다. KEC는 생산직 노동자를 J1·J2·J3·S4·S5 등으로 구분해 임금 테이블을 적용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 기본급과 호봉 간 인상 폭이 달라져 J3는 S4 대비 기본급과 고정연장수당을 비교했을 때 33만원 가량 적다.

개별법령으로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관되고 체계적인 규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노동과 관련된 차별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같은 개별법령을 통해 규율되고 있다. 하지만 범위와 사유 등에 법령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상 차별금지 규정은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외관상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로 특정 집단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등 간접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차별금지법 발의·인권위 평등법 입법추진

차별금지법은 2006년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이후 7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채 번번이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지난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다. 직접차별 뿐만 아니라 간접차별까지 차별금지 범위 대상을 넓히고, 차별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함했다. 진정 제기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인권위도 같은달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 평등법 시안에 따르면 괴롭힘과 성희롱도 차별로 명시하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화숙 인권위 차별시정총괄과 사무관은 “종교지도자 면담 과정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이 체감된다”면서 “국민인식조사 결과 평등법 제정에 대해 10명 중 9명이 찬성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꼭 제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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