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소인배(小人輩)’라는 말이 있다. 마음 씀씀이가 좁고 간사한 사람들이나 그 무리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소인배와 반대되는 사람들을 무어라 일러야 할까. 언뜻 생각하면 ‘대인배’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 ‘대인배’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성립할 수 없으며,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배(輩)’는 무리를 뜻하며, 주로 안 좋은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불량배·폭력배·모리배 같은 말의 쓰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적인 비판 이전에 ‘대인배’라는 말이 이미 상당히 퍼져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표제어로 올리는 일이 생겼다.

대인배(大人輩): 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을 소인배(小人輩)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말을 표제어로 올렸을까. ‘대인배’라는 말은 언어에 대한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잘못 만들어 쓰는 말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본래 ‘소인배’에 상대해 쓸 수 있는 건 ‘대인(大人)’ 혹은 ‘군자(君子)’ 같은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낱말들을 쓰는 사람이 드물어 옛말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그 자리를 요즘은 ‘대인배’라는 말이 빠르게 대체해서 차지하고 있는데, 잘못 만든 조어이긴 하지만 실생활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만큼 그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정 낱말의 쓰임새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따지는 건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가령 ‘역전앞’이나 ‘초가집’ 같은 겹말은 이미 역전(驛前)에 앞 전(前)자가 있고, 초가(草家)에 집 가(家)자가 있으므로 ‘역전’과 ‘초가’로만 써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원론적인 지적에 대해, 겹말을 만들어 쓰는 건 뜻을 강조하거나 더욱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이므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원칙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는데, 쉽게 끝날 논쟁은 아니라고 보인다. 자신들이 보기에 잘못된 말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려는 의지와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들의 노력에도 그런 계몽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논리를 따지기 전에 자신들이 사용하기에 편하고 서로 알아듣는 데 무리가 없다면 굳이 언어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인이 있으면 대인이 있고, 그에 따라 소인배가 있으면 대인배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인식이 잘못된 거라고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언어 사용자들에게 쉽게 가 닿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립국어원이 편찬 주체다. 국립기관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아무래도 언어를 대하는 태도가 보수적인 관점에 가까운 편이다. 그에 반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찬팀은 조금 더 열린 태도로 언어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아래 낱말을 하나 더 보자.

프림(Frima): 커피에 넣어 먹는 ‘크림(cream)’을 흔히 이르는 말. 상표인 프리마(Frima)에서 온 말이다.

이 낱말 역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만 실려 있다. ‘프림’은 잘못 사용하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사전 밖으로 내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드러난 경우다. 이렇듯 배척 대신 그런 말이 쓰이게 된 배경까지 친절한 풀이를 담아 표제어로 올리는 게 국어사전 이용자들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까. ‘대인배’라는 말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배척 대상이 아니라 끌어안고 가야 할 낱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어사전이나 국어학자들이 아무리 잘못된 말이라고 해도 어차피 실제 사용자들은 그 말을 버리지 않을 테니.

우리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한탄하는 사례로 자주 거론하는 게 ‘착하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착한 가격’, ‘착한 몸매’처럼 이상한 용법으로 쓰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해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착하다’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착하다: 1. (사람이나 그 마음이) 곱고 어질다. 2. (가격이) 품질이나 성능에 비해 싸다.

몸매를 가리키는 용법은 아직 풀이에 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담기게 되지 않을까. 그런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회 집단의 성격과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일부 사람들의 바람처럼 엄숙하고 도덕적인 쪽으로만 발전하거나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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