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환 공인노무사(대전노동권익센터 법규팀장)

‘특수고용직’ 노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 시각에서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다. 특수고용직은 실질적으로는 여느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지만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택배노동자, 배달 업무를 담당하는 이동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이러한 특수고용직에 대해서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리키는 택배 노동자로 전형적인 특수고용직이다.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돌아다니던 리키가 택배 일을 시작하기 위해 택배 대리점주를 만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택배 대리점주는 리키가 고용되는 것이 아닌 ‘합류’ 하는 것이며 출근카드와 같이 구속되는 것은 없고 알아서 일을 하고 오로지 ‘배송기준’만 지킨다면 모든 것이 리키의 자유라고 했다. 그리고 점주는 리키에게 회사의 차량을 이용할지, 본인의 차량을 이용할지 물어본다. 리키는 본인의 차량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택배용 벤을 거금을 들여 구매한다. 리키는 이전과 달리 편하게 일할 수 있고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가져가면 가족들이 더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해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에서 리키가 할 수 있는 처음이면서 마지막 선택권이었고, 이 때 누리는 행복한 감정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리점주가 말한 ‘배송기준’은 출근카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깐깐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부과되거나 아니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알짜노선에서 배제되는 패널티가 부과됐다.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리키에게는 근무시간을 재량적으로 선택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리키는 일반적인 개인사업자처럼 마음대로 쉬는 날을 정할 수도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대리점주에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준 리키는 자신의 집안 문제로 일을 쉬어야 했을 때 자신 대신 일할 대체기사를 본인 비용으로 직접 고용해야 했다. 심지어 일하다 강도의 폭행에 갈비뼈가 부러져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리키는 막대한 벌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나가야만 했다. 리키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휴식을 취할 권리도 없었다.

대리점주로부터 어떤 지원도 없이 오로지 본인의 비용으로 구매한 택배용 벤으로 리키는(개인사업자임에도) 본인의 딸과 함께 일을 할 수 없었다. 택배업이 프랜차이즈라서 고객의 항의가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본인이 응원하는 축구클럽이 다르다고 꼬장을 부리는 고객, 택배가 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당에 위험하게 개를 풀어두는 고객처럼 진상고객은 덤이었다.

굳이 한국이라는 국가적 범위까지 넓히지 않고 내가 일하고 있는 대전만 보더라도 수많은 리키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은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중학생들이 서울에서 렌트카를 절도해 대전으로 몰고온 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동노동자를 치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동노동자는 사망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목숨을 잃은 이동노동자도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최근 대전노동권익센터에서 진행한 이동노동자 실태조사를 하던 중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 사고 이후 업체측에서 산재보험 가입을 권고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은 후에야 바뀌면 너무 늦다. 단순히 금전적인 손해가 아닌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 가족이 느끼는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빨리 이 세상 모든 리키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다른 노동법의 적용을 받아서 행복하게,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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