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89년 가을학기가 시작되자 대학가엔 새로 부임해 온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 대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컸다. 총학생회는 그의 얼굴 사진을 밟지 않고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정문 앞 인도 바닥에 덕지덕지 그의 얼굴 사진을 붙였다. 나도 아침마다 그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붙은 대자보를 밟고 등교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력만으로 그레그는 80년대 말 한국에서 반미의 상징으로 불렸다.

5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 중앙정보국(CIA)에 입사한 그는 중국·일본·미얀마·베트남·한국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70~72년 베트남에 근무했고, 박정희의 유신이 맹위를 떨쳤던 73~76년 CIA 한국지부장을 지냈으니 그럴 만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89년 여름 그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하자 한국 대학가엔 그를 비꼬는 노래도 등장했다. 그는 그해 9월 한국에 부임하면서 한국 기자들과 별도의 회견까지 잡아 “한국 내 반미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 CIA에선 이미 은퇴했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해야 했다.

30년 전 이 땅에서 반미의 상징이었던 그는 최근엔 친북 인사로 불린다. 은퇴 뒤 북한을 자주 방문해 미국에서 북한 입장도 옹호했다. 73년과 80년 두 번에 걸쳐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구명한 것도 그레그였다. 최근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특사설도 자주 등장한다.

몇 년 전 그가 쓴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이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번역한 이는 30여년 전 잭 런던의 사회주의 디스토피아 소설 <강철군화>를 번역했던 언론인 차미례씨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30년 시간을 두고 우리 사회가 그레그를 평가하는 방식이 이렇게 달라졌지만 그가 베트남에서 수행했던 더러운 임무와 니카라과 반란군을 불법지원한 콘트라 게이트가 지워지진 않는다. 그가 마국의 네오콘이나 한국의 태극기 부대처럼 대책 없이 행동하진 않지만 미국이란 제국을 위해 철저하게 복무해 온 건 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에 복무해 온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지난 6일 95살에 숨졌다. 스코크로프트는 키신저·브레진스키와 함께 40년 이상 세계의 헌병을 자처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이끌었다. 한국일보는 지난 15일 10면에 ‘40년 이상 미 외교정책에 관여한 냉전 종식의 설계자’라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그레그 전 대사도 스코크로프트계 인사였다고 소개했다.

그레그의 회고록처럼 브레진스키의 회고록은 2004년 <제국의 선택 – 지배인가 리더십인가>란 이름으로 우리 말로 번역됐다. 브레진스키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양대 제국을 좋은 제국과 나쁜 제국으로 나눴다. 좋은 제국은 리더십으로 타국에 개입하고 나쁜 제국은 지배하려고 든다고 했다. 그 책을 번역한 대학교수는 좋은 제국, 미국을 넘어 브레진스키를 노암 촘스키나 안토니오 네그리에 비유했다.

브레진스키의 책이 번역되자 당시 중앙일보에 ‘시평’을 기고했던 조국 서울대 교수는 2004년 5월8일 27면에 ‘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엔 미국과 영국 군인들이 이라크인들에게 자행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드러나 공분을 샀다. 조 교수는 미국과 영국을 두 나라를 향해 “‘제국의 선택은 지배인가 리더십인가’라는 브레진스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좋은 제국과 나쁜 제국을 나누는 기준이 있기는 할까. 이런 구별법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를 논하는 것만큼 공허하다. 적어도 한국처럼 미국의 타국에게 두 정당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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