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

이번 주 예정된 서울청년유니온 하루캠프가 취소됐다.

상반기부터 코로나19로 갈팡질팡했던 순간들을 꼽으면 두 손이 모자란다. 청년단체들과 함께 메이데이 축제를 열어 보겠다는 야심 찬 사업계획이 있었다. 투쟁의 장에 꼽사리 낀 것 같은 이질감을 해소해 보려는 기획이었다. 그런데 본격 가동했어야 하는 4월에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예년의 1박2일 여름캠프를 당일치기로 바꾸고 참석 규모도 줄여서 준비했으나 급작스런 코로나19 확산세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 하나를 열 때마다, 조합원과의 자리를 준비할 때마다 공간은 어느 정도 크기여야 다닥다닥 앉지 않을지, 다과는 어떻게 해야 위생적인지, 몇 명 규모까지 모여도 될지, 적극적으로 참석을 독려해도 되는 건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시대에 모임을 열려면 감수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돈은 없고 모이고 싶고 위험도 줄이고 싶은 욕심쟁이들은 건건이 머리가 아팠다.

이런 시간을 지나는 동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볼 때면 양가감정이 일었다. 한 줌에 불과한 모임을 진행하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더 크게 더 위험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시민에게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는 걸 상기하면 다른 풍경이 보였다. 결집한 사람들을 두고서 어떤 장면은 용인이 되는데 다른 장면은 허용될 수 없다는 공적·사적 판단이 넘쳐난다. 코로나19는 행정·사법·개인의 판단에서 하나의 근거로 얹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설득력을 얻는다. 모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모였으니까 그 주체가,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전도된다. 주체나 의제가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논의에서 지워진다. 눈에 보이는 것도 많이 바뀌고 잃었지만, 무형의 권리가 코로나19의 외피를 걸치고 어물쩍 후퇴되는 건 더욱 아찔하다.

지난 주말은 유독 심했다. 그 파장이 너무 하지만 그 전 주말에도, 지난달에도 광장엔 사람이 가득했다. 모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프라인만 능사냐는 반박은 잘 들리지 않는다. SNS에 올린 글 하나로 언론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 아니고, 마이크 한 번 잡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에 닿을 수 없다는 걸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라서 가능한 사람에게 대안 없는 억압은 함께할 수 있는 시공간을 박탈당한 감각만 남긴다. 방역을 소홀히 하자거나 의료진의 애씀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면 대안을 마련하고 싶은 바람이다.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이 시기를 지날 수 있기 위함이다.

집회·모임 불허에는 보다 일률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일정 규모의 모임을 가능하게 한다면 공공의 대관부터 닫을 것이 아니라 공공대관 공간에 대해 관리를 확실히 하면서 민간을 보상하는 방법도 있다. 비대면을 할 수밖에 없는 판단이 있다면 전환 방법과 지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동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청년은 비대면·언택트 사회에 적응을 잘할 것이라고, 이미 능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나 세대로는 갈래를 탈 수 없는 문제다. 청년이라고 누구나 비대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도 아니거니와, 적응하는 것과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청년’유니온 이라고 비대면에 능하거나 언택트를 환영하지 않는다. 비대면·언택트 어쩌면 그린뉴딜까지. 차고 넘치는 말들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예컨대 주말부터 이어진 급격한 확산으로 개학에 차질이 생겼다. ‘비대면으로 전환한다’에서 그치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비대면 수업으로 모든 학생이 교육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해결책을 내고서야 비대면이라는 단어는 코로나19 시대에 쓰임새 있는 단어가 된다.

스며드는 위험으로부터 지킬 것이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의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도, 함께하는 감각을 잃는 것도, 범람하는 불평등도 무엇하나 두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코로나19 시대 활동가가 상반기를 지나며 마음에 담아 둔 것은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두려워하되 그걸 외면하지 않도록 정신줄을 챙기는 것, 짧지만 쉽지 않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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