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당전국위원회에서 ‘국민건강보험(Medicare for All)’ 공약 채택에 반대표를 던진 메리 케이 헨리 서비스종업원노조(SEIU) 위원장. <위키피디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은 ‘국민건강보험(Medicare for All)’이 반노동적이라고 반대한다.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하면 노조가 단체교섭에서 어렵사리 확보하고 있는 회사 제공 민간건강보험의 혜택이 박탈되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다.

한국 실정을 빗대 가상의 사례로 설명해 보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건강보험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금속노조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사용자와 '대각선 교섭'을 해 삼성생명에서 제공하는 사보험을 구입해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과 가족에게 제공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될 경우 지금껏 조합원들에게 제공되는 사보험이 없어지거나 그 질이 하락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하지 않는 게 조합원들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노조들이 주최하는 토론회에서는 “우리가 임금을 포기하는 대가로 사설건강보험 혜택을 단체협약에 넣을 수 있었는데, 만약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된다면 이미 누리고 있는 사설건강보험 혜택이 없어지거나 그 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에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면 기업복지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동시에 대기업에서도 제대로 된 임금교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므로 노조 본연의 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문제는 사정이 좋은 대기업에서는 사설건강보험에 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노조 교섭력이 약화되고 동시에 대기업의 지불 능력이 하락하는 상황이 확산하면서 보험료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조합원 67만명을 둔 미국연방종업원조합(AFGE)의 재클린 사이먼 공공정책국장은 “연방정부 종업원이 내는 (사설건강보험) 요금 부담이 꾸준히 늘어 국민건강보험에 들어가는 세금을 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실정”이라고 말한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하지 말고 단체교섭으로 “고용에 기반해 개별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얻어지는(employment-based and employer-bargained)” 사보험을 유지하자는 입장은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 조합원과 노조가 제공하는 혜택에서 소외된 대다수 비조합원을 분열시키려는 술책에 다름 아니다.

2018년 11월 뉴욕 주의회가 세금을 재원으로 모든 주민에게 적용되는 주정부 차원의 건강보험을 도입하려 하자 공공부문 노조들이 재계 단체들과 손잡고 반대했다. 공적 보험이 도입되면 그동안 누리던 사적 보험 혜택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미국 노조운동에서 공적 건강보험은 “진보운동가들의 정치화된 주장”이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평조합원들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이는 노조로 조직된 백인 제조업 노동자 다수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데서 잘 드러난다.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쟁취한 사보험을 없애려는 정치인들을 지지할 수 없다”는 정서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에서 노동 관련 기사를 써온 스티븐 그린하우스는 “많은 노조원들이 그들이 누리는 사적 의료보장에 만족하고 있으며, 그들이 모르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공포스러워 한다. 아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고 노조원들은 말한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사적 의료보장에 만족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사용자와의 교섭에서 많은 돈이 의료보장에 들어가야 하므로 임금 인상은 정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분석한다. 그린하우스에 따르면, 이러한 노동운동 내부의 분열은 1930년대 루스벨트 뉴딜 때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미국 민주당전국위원회(Democratic National Committee)는 오는 11월 대통령선거 공약을 논의했다. 여기서 ‘국민건강보험(Medicare for All)’ 도입 안건은 반대 125명, 찬성 36명으로 부결됐다. 코로나19 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기대한 이들도 있었으나 보기 좋게 물 건너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노조들 가운데 미국교사연맹(AFT)·전국교육협회(NEA)·서비스종업원노조(SEIU)·전기노동자조합(IBEW)을 대표해 민주당전국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 지도부 4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는 IBEW를 뺀 나머지 3개 노조가 그 동안 국민건강보험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왔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globalindustryconsu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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