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1천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현재도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재난참사 피해자들. 그들은 여전히 미흡한 조사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SK케미칼은 기소조차 하지 못했기에 피해자들은 지난해 재조사를 요구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질환으로 인한 고통도 힘들지만, 제대로 처벌받고 책임져야 할 기업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현재 상황이 더욱 고통스럽다.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사고는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5명이 다친 중대재해였다. 그런데 사고를 직접 목격한 노동자가 많았기에 이들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 이 사고로 산재 사망사고를 목격한 동료노동자의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 지원대책이 미흡하지만 마련될 수 있었다. 산재도 인정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 마련 또한 지역의 노동안전보건단체와 피해자의 끈질긴 요구로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3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다.

원인 제공은 기업이, 고통은 피해자·가족에게로

쿠팡 부천물류센터(신선물류센터 2공장)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확진 피해를 받은 노동자는 스스로 ‘보건 전과자’라는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한 피해자는 치료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을 견디며 가족조차 면회가 안 되는 1인 병실에서 한 달 이상의 격리치료를 홀로 견뎌야 했다. 퇴원 후 집으로 갔으나 이미 코로나19 확진자라는 낙인으로 가족과 친지, 이웃에게 불안하고 무서운 존재가 돼 버렸다.

또 다른 쿠팡 피해자의 경우 가족에게까지 전염됐고, 남편은 입원 11일째 되는 날 급성호흡부전으로 심정지가 와서 석 달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 있다. 회사의 안일한 대처와 부실한 방역으로 감염된 것도 모자라 가족까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의 산재보험 제도로는 가족까지 적용하지 못하기에 어떠한 치료지원도 받지 못한다.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태도다. 결국 남편 치료비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해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부분 사회적 재난참사와 산재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은 뒤로한 채 기업의 이윤추구를 우선하는 관행이 원인으로 확인된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미이행, 검증되지 않은 물질 제조·사용, 안일하고 부실한 방역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기업이 했는데도 책임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기업은 개별적 보상으로 회유하거나 해고를 포함한 부당한 행위와 비인간적인 행위를 해 왔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거나 지탄받을 때야 형식적인 사과로 모면하는 일도 많았다. 결국 이중 삼중의 고통은 온전히 피해자와 가족에게 전가된다. 피해자와 가족은 치유받지 못한 채, 오히려 기업과 사회에 책임과 사과를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차가운 시선에 시달리기도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달 1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는 ‘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와 가족이 겪어야 했던 죽음과 파괴된 삶을, 피해자의 요구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중되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진심 어린 사과, 피해자 고통에 대한 인정과 확장된 보상이 이뤄져야 그나마 피해자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요구가 과도한 것이 아니라 ‘기본’을 제기하고 있음을 알고, 한시바삐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안아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죽음과 파괴된 삶이 반복되지 않고, 참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노동자·시민의 요구로 만들어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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