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전자 자회사 하이텔레서비스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임균택씨의 유가족과 금속노조가 19일 서울 금천구 하이텔레서비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LG전자 자회사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노동자가 콜센터가 없는 지역센터에서 상담직군으로 직무가 전환되자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은 직무 스트레스와 직장내 괴롭힘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며 회사에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19일 금속노조 서울지부와 지부 하이텔레서비스지회(지회장 박지완)에 따르면 LG전자 자회사 ㈜하이텔레서비스 광주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했던 고 임균택씨 유족들이 지난 12일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업재해 급여를 신청했다. 직무 전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노조활동에 따른 직장내 괴롭힘 고통을 호소한 고인은 지난 3월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근무지는 광주센터인데 소속은 평택콜센터?
“수리기사를 상담직군으로 전환시킨 사례는 유일”


사건은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하이텔레서비스 광주센터에 수리기사로 입사한 고인은 당시 회사 추계행사에 참여해 밤 11시께까지 회식을 했다. 다음 날 광주센터에 출근한 뒤 전북 전주로 출장을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전날 회식에서 마신 술이 문제가 돼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뒤 같은해 12월부터 상담직으로 전환돼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문제는 고인이 근무하던 광주센터에는 콜센터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이텔레서비스는 LG전자의 B2B서비스와 고객상담 업무를 하는 자회사인데 콜센터는 서울 가산동, 경기도 평택, 부산 세 곳에만 있다. 고인의 근무지는 광주B2B센터였지만 조직도상으로는 평택콜센터 소속으로 광주센터 안에서 혼자 상담업무를 하게 됐다. 회사는 출장을 다녀야 하는 업무 특성상 면허취소로 직무 수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완 지회장은 “내근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있어도 수리기사를 상담직군으로 전환시킨 사례는 고인이 유일하다”며 “사실상 그만두라는 의미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고인이 상담업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정황들이 확인됐다. 지회에 따르면 고인은 고객만족도 평가 ‘매우불안(0점)’을 받아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고 야근을 해야 했다. 지회 간부에게 “저성과자로 임금인상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한 뒤 수리기사로 직무 변경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는 직무변경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인들에게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고인은 지난 3월18일 관리자에게 상담 발음이 나쁘다는 지적을 받은 뒤 반차를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활동 압박 의혹도
“누적된 스트레스가 사망에 영향 추정”


노조활동에 따른 회사의 압박 의혹도 제기됐다. 지회 조합원인 고인은 지난해 4월 징계위에 회부됐다는 광주센터 한 동료직원의 고민상담을 해 줬다. 이러한 사실이 ‘윗선’에 보고돼 같은해 5월 평택콜센터 관리자가 광주센터를 방문해 고인과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관리자는 “연세도 있고 그러신데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삽시다” 하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회에 따르면 고인은 이 사건 이후 가족과 동료들에게 “광주센터 내에서 믿을 사람이 없다” “평택 소속이지만 평택도 아니고 사무실은 광주(에서) 쓰지만 광주(소속)도 아니고” 등의 고립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유족은 지난 6월12일 사측과 면담을 진행한 뒤 회사에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진상조사를 요청했지만 일체의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6일 재차 회사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다음 날인 7일에도 같은 답을 받았다. 유족과 지부·지회는 19일 오전 서울 금천구 하이텔레서비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임을 인정 △공식사과 등을 회사에 촉구했다.

하이텔레서비스는 공문을 통해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한 결과 관련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지회에 전달했다.

홍관희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조활동으로 인한 회사의 압박과 직무 전환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가 사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하이텔레서비스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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