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2017년 겨울에 <신과 함께-죄와 벌>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1천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는 이 영화에는 일곱 개의 지옥이 나온다. 그중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지옥 이름이 표제어로 실려 있다.

도산지옥(刀山地獄) : <불교> 칼을 심어 놓은 산이 있다는 지옥.

발설지옥(拔舌地獄) : <불교> 말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지옥. 보습으로 혀를 가는 고통을 준다.

검림지옥(劍林地獄) : <불교> 불경, 불효, 무자비한 죄를 지은 사람이 떨어지는 지옥. 시뻘겋게 단 뜨거운 쇠 알의 열매가 달리고 잎이 칼로 된 나무숲 속에서 온몸이 찔리는 고통을 받는다. ≒검수(劍樹)ㆍ검수지옥.

모두 불교에서 온 용어들이다. 위 세 개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지옥은 어디로 갔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설명하자면 다른 네 개는 화탕지옥(火湯地獄), 독사지옥(毒蛇地獄, 독사가 우글거리는 지옥), 한빙지옥(寒氷地獄, 얼음으로 뒤덮인 지옥), 거해지옥(鋸骸地獄, 톱으로 몸을 자르는 지옥)이다. 이 용어들도 똑같이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지만 표제어에는 빠져 있다. 서운하기는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선정 기준은 워낙 들쭉날쭉해서 굳이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른 세 개의 지옥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예가 그리 많지 않지만 ‘화탕지옥’이라는 말은 제법 널리 쓰이는 편인데 왜 빠졌을까? 이 말은 꼭 불교 용어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날씨가 지나치게 더울 때도 ‘마치 화탕지옥에 들어온 것 같아’처럼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많이 쓴다. 올해 여름은 워낙 장마가 길어 이 말을 쓸 기회가 없었으나 여름철에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다른 국어사전들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왜 그런 건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던 중 이리저리 사전을 들추다 아래 낱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는 걸 발견했다.

확탕지옥(鑊湯地獄) : <불교> 쇳물이 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부처의 금계를 깨뜨린 이, 중생을 죽여 고기를 먹은 이, 불을 질러 많은 생물을 죽인 이, 중생을 태워 죽인 이가 가는 지옥이다.

‘확(鑊)’은 가마솥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다.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서 삶아 죽이던 형벌을 뜻하는 ‘확탕(鑊湯)’과 ‘확팽(鑊烹)’이 따로 표제어로 올라 있기도 하다. ‘화탕지옥’이라는 말은 필시 ‘확탕지옥’에서 왔을 것이다. ‘확탕’보다는 ‘화탕’이 훨씬 기억하기 쉽고 간명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말의 변용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화탕지옥’은 현재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우리말샘> 사이트에 ‘확탕지옥’과 같은 뜻을 달고 실려 있으나, 다른 국어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화탕지옥’이라는 말은 버려야 할까? ‘화탕지옥’은 틀린 말이니 버리고 앞으로는 ‘확탕지옥’이라는 말만 쓰라고 하는 게 옳을까? 규범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말의 쓰임새는 국어학자나 국어사전 편찬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언중이 정하는 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렇게 쉽사리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화탕지옥’이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더라도 언중은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두 낱말을 동의어로 처리해서 함께 표제어로 올리는 게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화탕지옥이 확탕지옥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을 풀이에 덧붙여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그걸 되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장면으로 갔던 짜장면이 결국 제자리를 찾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다른 예로는 괴발개발 대신 하도 많은 사람이 개발새발이라고 쓰니까 2011년에 개발새발도 표준어로 인정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예를 찾자면 무척 많다. 주야장천(晝夜長川)이 표준어로 돼 있지만 그보다는 주구장창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주구장창은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당당히 올라 있다. 현실에서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화탕지옥’도 어엿한 표제어로 국어사전에 오를 때가 됐다. 아니 진작에 올렸어야 한다.

박일환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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