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광복절 연휴를 앞둔 지난 14일 한국게이츠가 폐업에 반발하며 공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지난 7일 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는 기사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읽었다. 몇 달 전 노조간부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했던 대구의 사업장이었다. 당시 상담은 회사 폐업에 관해서는 아니었다. 불과 몇 달 뒤에 폐업할 사업장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잔업수당 등을 지급받기 위해 상담한다는 건 지금 보면 다소 뜬금없다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때 상담하고서 나는 조합원들의 통상임금 소송을 맡게 됐다. 그러다 회사 폐업 소식을 들었다.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하던 노조간부들,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폐업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사측이 공장과 인근에 설치된 텐트·현수막과 해당 지역에 주차한 차량을 퇴거하고, 공장 부지 점거·출입을 하지 말며, 회사가 공장 해산·청산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가처분 결정을 구하는 신청을 법원에도 냈다는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회사 폐업에 맞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하고 있는지 그 모습이 자세히 그려졌다. 그들은 회사 폐업에 맞서 공장에서 투쟁을 하고 있었다.

2. “회사가 폐업한다네요.” 담담하게 말해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물량 감소로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회사 방침을 이렇게 폐업이라고 잘못 표현해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자세히 물어서 파악해 보니 분명히 회사의 사업을 중단하고서 회사를 해산해 법인 소멸에 이르게 되는 그야말로 회사 폐업이었다. 노동자로선 결코 담담할 수가 없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폐업이었다. 이렇게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폐업 실시를 앞두고 게이츠 사측은 6월26일 당일 ‘제조 시설 폐쇄에 대한 한국게이츠의 입장’이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직원들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그 공고문에는 “당사는 향후 이번 결정으로 영향을 받게 될 직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지원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퇴직 및 조기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고 밝히고 있었다. 노조간부에 물어보니 그 퇴직 프로그램이란 희망퇴직 실시를 두고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것은 7월 말에 회사 문을 닫으니, 7월20일까지 희망퇴직해서 나가면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고 버티면 그마저도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회사 폐업에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법은 없지만, 즉 법적으로는 사용자가 위로금 한 푼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게이츠 자본은 이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니 ‘직원들을 존중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지원’하는 것이고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퇴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공고했던 것이다. 얼마나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기에 한국게이츠에서 자본은 이렇게 대단하게 퇴직 프로그램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한다고 밝히는 것일까. 몹시 궁금해서 나는 노조에 물어봤다. 종전에 실시해 오던 희망퇴직제도에 따른 위로금 수준이라고 했다. 정말로 그러하다면 도대체가 특별할 것이 없는 퇴직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마저도 희망퇴직 신청해 받고 나가지 않으면 한 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 사용자가 노동자를 협박하는 프로그램일 수는 있어도, 직원들을 존중하는 퇴직 프로그램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기아자동차 1차 협력업체이고,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쳐 1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세계 30여개국에 100개 이상의 공장을 두고 있는 게이츠 자본의 한국법인 사업장이고, 1989년부터 30여년간 거의 매년 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최근 3년간 해마다 매출 약 1천억원대에 순이익 50억원대를 실현했다. 이렇게 언론에 보도된 한국게이츠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폐업의 이유가 몹시 궁금해진다. 도대체가 회사의 경영사정이 어려워서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의 경영사정으로 일부 노동자를 해고하는 정리해고에 대해, 폐업은 모든 노동자를 사실상 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등을 요건으로 하는 정리해고에 대해(근로기준법 24조 참조), 폐업은 그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법대로 하자면, 폐업은 그야말로 사용자 맘대로다. 그런데 게이츠 자본이 현대차·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에 부품 납품을 하지 않겠다는 폐업은 아니다. 한국게이츠가 폐업하더라도 게이츠 자본의 판매법인을 통해서 중국 등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부품을 여전히 국내 완성차업체에 납품한다는 폐업인 것이다. 그러니 한국공장을 폐쇄하고 그 물량을 해외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한국 회사의 폐업인 것이다. 해외공장 생산으로 절감된 인건비 등을 게이츠 자본의 이윤으로 챙기겠다고 한국게이츠를 폐업해서 노동자 모두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로 보자면, 게이츠 자본은 그대로 존속하면서 오히려 그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더욱 도모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게이츠에서 노동은 소멸한다.

4. 그동안 외국자본의 철수가 있을 때면 그 문제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노동조합이 주최해서 그 행태를 성토하고 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2015년 하이디스에서 공장 폐쇄하고 LCD 생산사업을 폐업하면서 졸지에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을 때도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입법 등 무슨 대책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번 한국게이츠의 폐업이 있은 뒤에도 다시 토론회가 열렸다. 7월2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다국적기업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제사무금융IT노조연합(UNI) 한국협의회가 주관하고, 강은미·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주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다국적기업의 자본철수를 방지하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국인투자 촉진법(외국인투자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보니 토론회에서는 윤효원(인더스트리올 글로벌컨설턴트)은 “기업은 개인이나 소수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운용하는 기관이 아니라 주주와 사용자, 노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갈등을 빚고 해소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며 “이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밝힌 국제기준을 토대로 노조가 다국적기업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대내외 연대를 통해 기준 준수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미경(민주노총 국제국장)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구속력 있는 조약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가 유엔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정부에 권고했는데, 범부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외국자본의 철수를 막는 무슨 입법 마련을 토론한 것이라고 읽히는데 게이츠나 하이디스와 같이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생산사업을 접는 걸 막는 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 토론회에서 했다는 위 토론자들의 말을 곰곰 읽어 보면, 외국자본의 국내 법인 폐업 자체를 금지하는 등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기보다는 폐업 실시에 있어 국제기준 마련과 그 준수를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어째서일까. 폐업은 사용자 자본의 일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폐업은 자유로 규정하고 있는 이 자본의 세상에서는 자본의 국적이 무엇이든 폐업은 자유다. 자본의 국적이 무엇이라도, 폐업은 자본의 전속적 권한이다. 노동과 공유하거나 노동의 권한으로 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아무리 토론회를 열어서 외국자본의 철수를 성토하고 국제기준의 마련 내지 그 준수를 외치고 입법 마련을 촉구해도 그 자본의 폐업 자유를 박탈하는 입법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성토하고 외치고 촉구할 수 있을 뿐이다.

5. 한국게이츠지회가 속한 금속노조 대구본부는 13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게이츠가 해고노동자들에게 하는 행위를 우리 사회가 용인한다면 외국자본 앞에 우리 노동자는 기계처럼 일하다가 쉽게 버려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신호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우리 노동자가 기계처럼 일하다가 쉽게 버려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그렇게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게이츠의 폐업 해고를 두고서 노조가 기자회견에서 위와 같이 밝힌 것은 무엇 때문인가. ‘노동자가 기계처럼 일하다가 쉽게 버려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노동자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게다. ‘노동자가 기계처럼 일하다가 쉽게 버려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회사 폐업에도 한국게이츠에서 노동자 25명이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은 ‘노동자가 기계처럼 일하다가 쉽게 버려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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