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한미워킹그룹 해체하라.”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하라.” “남북합의 이행하라.”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과 근처 사거리에 구호가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 간부·조합원 2천명가량의 목소리다. 잿빛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있었다. 일부는 비를 맞았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구호를 외칠 때나 음악이 울릴 때마다 참석자들은 손에 쥔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민주노총 8·15 노동자대회 성사 선포 기자회견 풍경이다. 당초 민주노총은 지난달 초 전국노동자대회를 열려고 했지만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집회금지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이날로 연기했다. 이번에도 서울시는 집회금지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민주노총은 행사를 이어 갔다.

“한반도 상황 엄중”

광복절을 맞아 집회신고를 한 단체 10곳은 경찰의 집회금지 명령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보수단체와 민주노총 건을 포함해 8건을 기각했다. 민주노총은 집회 장소를 서울지하철 안국역에서 보신각으로 바꾸고, 행사 방식을 기자회견으로 변경해 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보신각 인근 사거리에 분산돼 늘어서서 도로 방면을 보고 피켓을 들었다.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대통령보다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며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고,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현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이 있어 함께 투쟁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코로나19 확산 염려되는 상황이라 기자회견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이날 노동자대회는 예년과 달리 서울·부산을 비롯해 지역별로 분산해 열렸다. 보신각 앞에는 서울·경기·강원·충청지역 조합원들이 모였다.

“우리 민족끼리 힘 합치는 것 미국이 방해해”

조합원들은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정상들의 합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어 주권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요구했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75년 전 해방은 됐지만 지금 이 나라는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한미군·한미워킹그룹·세균전 부대·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고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년 전 현 정부가 판문점과 평양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통일의 봄을 약속했지만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은 미국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문재인 정권은 민족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워킹그룹은 남북현안에 관한 협의를 체계화·정례화하기 위해 2018년 출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미연합훈련과 무기증강 중단도 요구했다.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전반기 무산됐다. 지난 16일 재개될 예정이었지만 참가 인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18일로 이틀 연기됐다. 이창복 6·15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정부는 최근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며 앞으로 5년간 300조원이 넘는 국방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땅의 무기가 안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자대회 참여자들은 행사를 마친 뒤 8·15 민족자주대회에 결합했다. 광복 75주년 민족자주대회추진위원회가 연 이 행사는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