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우리나라에서 차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일까?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의하면 지난 1년간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 71%가 ‘직장’이 차별장소라고 대답했다. 2위인 ‘온라인’(29.4%)보다 두 배 넘게 높은 수치다.

법에서 말하는 근로의 본질이 사용자에 대한 종속노동인 것을 떠올려 보면 일터가 차별에 가장 취약한 장소라는 것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잠자는 것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근로계약의 이행이 지속적인 지휘·명령과 위계 체계를 통해 이뤄지기에 차별과 인격침해가 어느 관계보다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를 명시하는 개별법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곳도 노동관계법이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에서 개별 조항으로 성별·연령·국적·사회적 신분·고용형태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

그러나 지금의 법으로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별을 담아낼 수 없다. 기존에는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고 발견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차별의 속성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구색을 ‘살색’이라고 불렀고, 장애인의 반대말이 ‘정상인’인 사회에 살았다. 성적지향이나 성 정체성, 병력, 가족형태 등 드러내지 못하는 것 자체로 모멸과 차별을 견디는 경우도 많다. 개별법으로는 위와 같은 현실의 복잡한 차별 사유와 양태를 일일이 규율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에서 지나치게 근로조건을 중심으로 차별을 판단하는 것도 문제다. 차별의 결과가 임금과 승진 등 경제적인 불이익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된다. 그러나 차별은 단순히 다르게 대우하는 것을 넘어, 어떤 집단에 부정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이를 이유로 사회에서 분리하고 배제하고 위협하는 인격침해 행위다. 지금도 누군가는 일할 자리를 얻기 위해 편견 없이 자신으로 존재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한편, 자본은 차별과 혐오를 활용해 자신의 목적을 채우는 데 이용한다. 돌봄노동을 사회화한다면서 비정규직의 불안정 일자리를 대거 양산해 낸 데에는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고 남자보다 좀 덜 벌어도 된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연관돼 있다. 방송국에서 같은 아나운서 자리에 남자는 정규직, 여자는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관행에는 ‘여자 아나운서는 젊고 예뻐야 한다’는 성차별 관념이 작동한다. 우리 법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받을 권리를,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박탈한다.

인권은 누군가 가지면 다른 이의 몫이 줄어드는 ‘파이’가 아니기에 불평등의 결과는 모두에게 돌아온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구별하고 배제할 때, 자본은 이를 그 누군가에게 불안정한 자리를 주고 노동의 값을 후려치는 이유로 삼는다. 그러는 사이 정규직은 빨간색, 비정규직은 파란색으로 사원증 목걸이까지 구분 짓는 사회가 되고 노동자들은 모두의 평등을 요구하기보다 빨간 목줄을 얻을 자격을 얻기 위한 공정함에 목매달게 된다.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7년 만에 발의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안하며 국회에 제정을 촉구했다. 최근의 이슈를 보면 우리나라는 20대 여성의 평범한 옷차림이 국회에서 허락되지 않고 청소년에게 얼굴을 검게 분장하는 것이 왜 인종차별인지 제대로 알려 줄 능력이 없는 곳으로 보인다. 차별금지법은 평등에 관한 헌법의 이념을 확인하는 기본법으로, 차별 감수성이 심각하게 낮은 우리 사회에 무엇이 차별인지 논의할 기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 내용을 보면 피부색, 용모 등 신체조건, 성적지향, 고용형태, 병력 등 23가지 차별 사유를 제시하고 2가지 이상의 사유가 함께 작용하는 ‘복합차별’도 금지 대상으로 했다. 고용, 재화·용역, 교육기관의 교육과 훈련, 행정서비스로 4가지 차별 영역을 제시하는데 이 중 고용에 관한 내용이 가장 구체적이고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범위가 근로기준법보다 넓고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를 불리한 대우와 동등하게 직접적인 차별행위로 규정했다. 차별 행위자에게 입증책임과 자료제출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과 인권위의 차별시정 명령 등 구제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차별이 일거에 줄지는 않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는 “무엇이 차별인지, 금지돼야 할 차별행위는 어떤 것인지, 차별을 없애 가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등과 같은 질문에 사회가 함께 답을 찾는 길을 여는 법”이라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설명한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의 인격권 침해에 대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고 침해돼서는 안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별금지법도 일터에서 먼지처럼 존재하는 차별의 사각지대를 더욱 드러내고 더 많은 존재가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평등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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