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 행정체계 개편과 관련해 2개 법안이 계류돼 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같은 당 최종윤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김영주 의원안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최종윤 의원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산업재해예방 계획을 수립·이행하고 필요한 경우 행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방정부도 산업안전감독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노동감독권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움직임은 법이 아무리 강화돼도 이를 집행하는 행정이 달라지지 않으면 매년 2천명이 산재로 숨지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뗄 수 없는 관계’ 산업안전보건 감독과 예방

산업안전보건 행정업무는 노동부와 2개 공공기관이 수행한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이 전체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총괄하고, 산재예방 사업은 안전보건공단이, 산재보상 업무는 근로복지공단이 하는 ‘1국-2기관’ 체계다.

현재 논의되는 산업안전보건 행정체계 개편의 초점은 산업안전보건 정책 가운데 특히 감독과 예방사업의 효과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은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수립하고 총괄·조정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령의 제·개정을 책임지고 노동부 지방노동청 등 일선기관이 사업장 재해예방 지도·감독과 법 위반사항에 대한 행정조치, 인·허가·신고 업무를 한다.

안전보건공단은 산재예방 전문기관이다. 산재예방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것부터 위험기계·기구에 대한 안전인증이나 검사, 민간 재해예방기관에 대한 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사업장에 안전보건진단이나 기술지원을 한다.

산업안전보건 감독과 예방사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동부는 “산업안전감독관 역할이 적발이 아닌 예방에 있다”며 “단순히 안전지침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관리·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전 지도와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일선현장에서는 노동부 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직원들이 함께 사업장을 감독·지도·관리한다. 건설현장 안전패트롤도 그렇다.

예산·인력·권한은 따로따로

그런데 예산과 인력·권한은 철저히 분리돼 있다.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 현원은 580명(정원 681명)이다. 산업안전감독관 1명이 관리하는 사업장은 4천개가 넘는다. 일반 근로감독관(1인당 담당 사업장 1천118곳)의 4배 가까이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2배 가까이 증원했지만 사업장수에 대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성도 문제다. 근로감독관은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가진 공무원 신분이지만 안전보건 전문가는 아니다.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보고 임용돼 산업안전감독관으로 배치될 뿐이다. 이후 순환보직으로 노동부의 여러 부서를 돌고 돈다. 안전보건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조직체계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산업안전보건행정 상당 부분이 안전보건공단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안전보건공단은 1천846명의 인력을 보유한 준정부기관이다. 산재보험기금에서 지출예산의 8%를 산재예방 사업비로 출연받아 운영한다.

문제는 안전보건공단의 산재예방 전문가들에게 행정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노조(위원장 이태형)에 따르면 공단 직원이 산재 발생 위험이 있는 급박한 현장에 있더라도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노동부 관할지청 감독관에게 전화를 걸어 ‘위험하니 조치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아주 위급한 경우에는 유선으로 요청하지만 대개 문서로 보내야 한다. 관할지청에 요청한다 해도 감독관이 100% 행정조치를 내리지는 않는다. 감독관 선에서 판단해 조치하는데 사업장에서 바로 해결되지 않는 터라 그 사이에 사고 위험 우려가 현실이 되기도 한다.

공단 직원들은 사업장 출입 권한도 없다. 이태형 위원장은 “사실 산재 위험이 높은 현장일수록 공단 직원들의 방문을 꺼리고 거부하는 경향이 높은데 그 현장을 보고도 눈앞에서 돌아서야 한다”며 “공단이 산재예방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사업장 출입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죽거나 다수가 다치는 중대재해가 일어난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안전보건공단 업무지만 조사권한은 없다. 안전보건공단에서 CCTV 영상 같은 물증, 관계자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 결과에 의존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 행정공백, 지방정부가 해답 될까?

노동자 38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참사를 계기로 지방정부의 근로감독 권한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종윤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산재예방 계획 수립과 이행 과정에서 지자체의 권한을 높였다. 지자체장이 현장 개선을 권고하고 공공기관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중앙정부의 노동경찰력을 지방정부와 공유하자고 요구한다.

중앙정부의 산업안전보건 행정공백을 지방정부가 메우겠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안전보건 감독권한의 지방이양에 반대했지만 중앙정부의 권한을 유지하면서 지방정부와 공유하는 것에는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세밀하게 관리하기 어려운 서비스업종이나 소규모 사업장 접근성을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성 확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별개로 작동하는 옥상옥 구조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본질은 산업안전보건 행정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



산업안전보건 행정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다만 행정체계 개편 방안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노동부에서 독립한 외청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노동부의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고용정책실이나 노동정책실처럼 격상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노사정과 안전보건공단 등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청으로 독립하느냐,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실로 격상하느냐 하는 틀보다 산업안전보건 행정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는 내용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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