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라떼기획사 사장 박라떼씨는 화가 났다. 신입 직원 김말년씨 때문이다. 일처리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결국 오늘 한마디 했다. “그따위로 일하려면 나가서 다른 회사 알아봐!” 신입직원 김말년씨는 충격을 받았다.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일해 왔는데.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저렇게 소리까지 지르다니. 곧바로 짐을 싸서 나왔다.

오늘 있었던 라떼기획사 김말년씨 퇴직사건의 전말이다. 김말년씨의 퇴직은 ‘해고’(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행위)일까 아니면 ‘사직’(노동자가 자신의 의사로 행하는 근로관계 종료행위)일까. 전자라면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해 봐야 할 사안이고 후자라면 해고가 아니니 부당해고 여부는 따져볼 여지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노동자 독자라면 대부분 해고라고 답할 것 같다. 당연한 것 아니냐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출제자의 자격수준을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반면 사용자나 회사 관리자 지위에 있는 독자라면 이게 왜 해고냐며 반박할 분들도 많을 듯싶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노동위원회사업을 담당하다 보니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을 14년째 하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하루 평균 3건 정도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심문회의에 참석해 왔다. 2007년 7월부터 해고서면통보제도가 시행된 후 이른바 해고존부 다툼 사건이 대단히 많다. 경험상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최소 20%는 되지 않을까 추정한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고 그래야 해고의 효력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말로 해고했을 때 과거에는 해고의 실체적 정당성만 다투면 됐으나 현재는 해고가 있었는지 여부부터 다투는 경우가 많아졌다. 해고의 당부(當否)를 따져야 할 사건이 해고의 존부(存否)를 다투는 사건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해고서면통보제도 시행 후 해고존부 다툼이 급증한 팩트만으로도 대부분 사용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건이라 봐도 비논리적인 추론은 아닐 것이다. 말로 해고한 것만으로도 해고사유는 살펴볼 것도 없이 부당해고가 되니 해고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분쟁사건은 법리적인 다툼보다 사실관계에 관한 싸움인 경우가 많다. 어느 한쪽이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동일한 사실관계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이해한 결과인 경우도 많다.

이럴 때 누구에게 입증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판례도 정리가 안 돼 있다. 해고사실은 해고를 주장하는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고(서울고법 2013. 10. 16. 선고 2012누34756 판결), 노동자의 의사에 의해 근로계약이 종료됐음을 주장하는 사용자가 그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한 판결도 있다.(서울고법 2015. 8. 19. 선고 2014누58350 판결) 두 판결 모두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됐다. 결국 객관적인 판단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익위원들이 전지전능한 지위에서 진실을 확정하든지, 아니면 김말년씨 퇴직사건처럼 라쇼몽 현상 같은 사안에 대해 법적으로는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해석을 내려야 한다.

노동위원회사업 담당자로서 필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공익위원들에 대한 모니터링이다. 위원들의 성향은 사실 이런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집단적 노사관계 사건보다 해고존부 다툼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보다 근원적인 노사관과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본디 누군가의 철학과 가치관이란 정치·경제·사회적 거대담론에서의 입장과 태도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더 명확하고 진실하게 발현되는 것 아니겠나. 해고통보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는지가 종종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언급된다. 머리띠 두르고 1인 시위라도 했어야 한다는 걸까. 해고당하면서도 회사의 요구로 사직서 쓰고 나오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부지기수인 현실이다. 사직서 냈으면 해고가 아니라 사직이다. 웬만해서는 비진의 의사표시나 강요에 의한 의사표시로 인정되지 않는다. 반대로 사직서가 제출되지 않은 경우는 일단 해고로 전제하고 뚜렷한 반증이 확인되지 않으면 해고라고 판정하는 것이 타당한 순리일 것이다.

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고 노동위원회에서 해고존부 다툼을 줄여 국가행정력 낭비도 감소시킬 입법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해 본다. ‘해고할 때는 해고통보서, 사직할 때는 사직서’다. 근로기준법에 “사용자는 근로자가 스스로 퇴직하거나 사용자와 합의해 퇴직하는 경우 사직서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미 대다수 사업장들이 사직서제도를 자체적으로 두고 있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추가적인 부담도 거의 없다.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노무관리절차로 법제화하고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기준으로 기능하게 하면 된다. 혹시 노동자가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제출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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