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박근혜 정권은 2015년 가을 일방적으로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박근혜 정권의 이런 파쇼로의 역행에 맞서 그해 11월 전국노동자대회는 민중총궐기대회와 결합해 진행됐다. 이 민중총궐기 투쟁 과정에서 농민 백남기 선생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졌고,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끌려 나와 경찰에 잡혀갔다. 그 1년 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거세게 타올랐다. 그 다섯 달 후 박근혜 정권은 붕괴됐다. 요즘 정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문재인 정권은 무사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임기를 마치더라도 다음 정권으로 이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할까. 하지만 4·15 총선에서 수구보수 세력이 궤멸 수준의 참패를 할 거라고 과연 예상했는가?

갤브레이스라는 미국 경제학자는 일찍이 1977년에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펴냈지만 정말 지금이 그렇다. 누가 트럼프 같은 극우 정치인이 미국 대통령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가. 누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될 거라고 예상했는가. 누가 코로나19가 지구촌을 휩쓰는 팬데믹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가. 그러니 예상 밖으로 문재인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전혀 경천동지할 일이 아니다.

촛불혁명에 뒤이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처럼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교훈 삼아 노동자·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과 지지세력은 이 말을 지지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들은 ‘문빠’가 됐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을 공격적으로 가로막았다. 이런 속에서 정권은 자기들만의 국정운영을 영위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반파쇼 민주화운동 전력을 가진 자유주의자들이다.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고 자본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념이다. 모순투성이의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낡아빠진 이념을 가지고 정의와 진보를 표방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렇게 도덕적으로 위선적이어서 대중의 지지를 잃기 십상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실패할 소지가 많았다. 자유주의 이념에 입각한 정치는 자본주의가 잘나가는 시기에는 그럭저럭 꾸려 갈 수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 시기에는 그럴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와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계급과 협력하면서 부분적으로라도 사회변혁을 추진하지 않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일관되게 촛불혁명의 주역인 노동자·민중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자본독재의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권은 애초부터 실패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 실패는 국정의 모든 영역을 총망라한다. 재벌해체 없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상징격인 최저임금 1만원은 결국 상여금과 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줬다가 빼앗는” 꼴이 됐다. 노동시간단축 없는 ‘일자리 정부’ 약속은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됐다. 평창올림픽에서 시작한 한반도 평화 드라이브는 표리부동하게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를 추진함으로써 파탄이 났다. 적폐청산은 박근혜·이명박 정권 징벌에는 추상같았으나 나라의 실세인 재벌에게는 봄바람 같았다. K·미르스포츠재단에 거금을 내놓은 재벌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최순실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이재용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석방했다. 유전무죄의 전형 아닌가. 이 뇌물제공의 동기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부정 합병에 관해서는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수사중지 및 불기소 권고 결정을 했고, 검찰은 두 달이 가깝도록 이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다. 소문으로는 기소유예할 거라고 한다.

사법개혁이 자유주의 세력의 사법권력 장악임이 드러났듯이 검찰개혁은 검찰권력 장악임이 드러났다. 권력기관 개혁은 경찰공화국 건설임이 드러났고, 국정원 개혁은 박정희 정권 이래 파쇼체제의 근간인 국가비밀경찰을 이름만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쇼임이 드러났다. 교육개혁은 대학 시스템의 공공화가 아니라 수능중심의 입시제도로의 역행으로 드러났다. 노동개혁은 노동기본권 신장이 아니라 단결과 파업의 자유 제한으로 드러났다. 청년세대들을 절망에 빠뜨린 3포의 하나인 내 집 마련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좋은 일자리가 없어 소득이 없는데 집값은 폭등했다. 청년세대는 ‘부모찬스’를 갖지 못하는 한 이제 영구 월세세대가 될 판이다. 그런데 정권은 “전세보다 월세가 낫다”고 잠꼬대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집값 인하가 아니라 안정이다.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얘기다. 이렇게 노동자·청년의 미래를 몰수해 놓고 자기 탓이 아니라 이전 정권들 탓이란다. 세금감면 등 특혜를 베풀어 임대사업자를 양성화한 자가 누구인가. 집값을 내려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집값을 올려서 가진 자들의 불로소득을 보장해 주면서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니 병 주고 약 주는 짓 아닌가. 이래 놓고도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고 책임지고 물러나는 공직자도 없다. 박근혜 정권을 불통이라고 했는데 문재인 정권도 그 못지않은 불통임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을 비판해서 잘못을 고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다음은? 현 집권세력의 몰락과 ‘혁신 파시즘’ 세력의 집권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쟁점이 되던 당시 이에 반대하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뿐입니다”라고. 그 밖에 답이 있는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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