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뒤늦게 지난 6월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특별공연 영상을 봤다.

가수 이적이 만든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를 아역배우들이 불렀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 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예전의 ‘당연한 것들’을 떠올리는 가사다.

사람의 마음을 더 크게 흔드는 것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특별함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 속에서 떠올리는 일상인 듯싶다.

1년에 두세 번 받을까 말까 했던 특별한 ‘안전안내문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울리는 일상이 됐다. “친구에게 오는 문자보다 안전안내 문자가 더 많이 온다”는 딸아이의 말이 ‘당연한 것’이 돼 버린 지금이다.

그런데 감염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벌어지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폭우가 쏟아졌고, 댐에서 초당 1만톤의 물이 방류되는 상황에서 인공섬을 고정하는 작업을 하던 배와 경찰정이 침몰했다. 그깟 섬이 무엇이라고 노동자들은 고무보트에 올라타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했을까. 작업을 했던 이들은 기간제 비정규 노동자였다. 사고 현장을 찾은 국무총리는 “부끄러워 낯을 못 들겠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사고들은 비일비재했다. 4년 전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도 안전을 위해 2인1조로 일해야 했지만 홀로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었고 2년 전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의 김용균씨도 혼자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최근 보름 사이에 마필관리사 두 명이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6일 23년차인 마필관리 노동자는 기숙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그는 평소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달 21일에도 마필관리사 노동자가 강도 높은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등졌다. 이 노동자는 유서에 “매년 다치니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왜 내가 매번 다쳤다고 질책을 받아야 하나. 난 다치고 싶지도 아프고 싶지도 않은데”라고 썼다. 서울경마장의 산업재해율은 전체 평균보다 약 44배가 높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은 통계임에도 당연하게 내버려 둔 결과는 참극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먼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문장이 주장이 되는 사회는 당연하지 않다. 세상 만물에 앞서는 것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이 문장은 구호가 되고 외침이 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는 명제가 의미상으로 ‘참’일지언정 현실에서는 여전히 ‘진실’에 의문 부호가 붙는다면 그 사회는 마땅하지 못하다.

동일한 노동을 해도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경제위기의 고통을 사회의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져야 하는 사회 역시 그러하다.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 힘껏 웃어요.”(<당연한 것들>, 이적)

우리가 힘껏 넘어서야 하는 것은 감염병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쟁과 탐욕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은 뒷자리로 밀려난 공동체, 이 증세는 어떤 백신에 의해 회복될 수 있을까. 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이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회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세상이 그립고 또 그립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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