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서울경마공원(렛츠런파크 서울)에서 마필관리사가 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5년 이후 한국마사회에서 일하다 숨진 마필관리사는 8명, 기수는 4명이나 된다.

6일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와 마필관리사노조 서울경마지부(지부장 김보현)에 따르면 23년차 마필관리사 전아무개(44)씨가 이날 아침 6시께 경마장 내 기숙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사망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숙소에서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부에 따르면 전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부상에 시달렸다. 최근까지 부상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았고 약물도 복용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관계자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스트레스까지 겹쳐 심리적인 불편도 컸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과로사 가능성도 염두에 뒀으나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아직은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조교사협회도 말을 아끼고 있다. 마필관리사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 조교사협회쪽은 “경찰이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전”이라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2005년 이후 마사회 다단계 하청구조 끝단에 매인 마필관리사와 기수의 죽음이 이어졌다. 2005년 이아무개 기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2010년 박아무개 기수, 2019년 조아무개 기수와 문중원 기수가 목숨을 끊었다. 2011~2017년 동안 마필관리사 2명이 폐암으로 사망했고, 3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올해 3월에는 마필관리사 출신인 김아무개 조교사가 유서를 남기지 않은 채 생을 등졌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달 21일엔 이아무개(33) 마필관리사가 강도 높은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날 또다시 전씨가 숨지면서 약 보름 새 동료 2명을 떠나보낸 마필관리사들은 충격에 빠졌다. 안양 한림대성심병원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를 찾은 한 동료 노동자는 “충격이 크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필관리사의 잇단 죽음의 원인이 경마산업의 중층적인 하청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은 수차례 제기됐다. 마필관리사는 말을 직접 관리하고 돌보지만, 마사회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마사회가 말을 소유한 마주와 경주마 출주 계약을 맺고, 조교사를 채용해 마방(마구간)을 빌려준다. 조교사는 마사회가 인증한 조교사 면허와 마방을 갖고 마필관리사와 기수를 고용한다. 조교사가 상금의 분배 권한과 마필관리사의 말 관리책임을 지고 있는 구조다. 마사회는 마필관리사·기수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는다며 사용자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마필관리사는 업무 강도가 높고 사고도 많다. 지난해 마사회가 발표한 서울경마장 재해율은 25.7%나 된다.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율 0.58%보다 약 44배 높다. 통상 마필관리사 1명이 말 세 필을 관리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더 많은 말을 관리해야 한다. 지난달 숨진 이씨는 마필관리사 11명이 37필을 관리하는 조에 속했다. 경주가 끝난 뒤엔 11명이 70필을 관리했다는 증언도 있다.

말에게 치이는 사고는 비일비재하다. 안장에 손가락이 끼여 다치는 사고도 난다. 숨진 이씨는 유서에 “매년 다치니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왜 내가 매번 다쳤다고 질책을 받아야 하나. 난 다치고 싶지도 아프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지”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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