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뉴질랜드는 두 개의 큰 섬으로 이뤄졌다. 크기는 얼추 비슷한데 북섬이 아래위로 더 길게 뻗은 모습이고, 남섬이 상대적으로 좀 더 통통한 편이다. 비슷할 것 같은 두 섬이지만, 여행자의 지나는 눈길로만 봐도 사뭇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선은 북섬이 남섬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사람도 많다. 요즘은 관광객이 늘어 남섬의 도로도 제법 복잡해지고, 크라이스트처치 같은 곳은 교통체증도 간혹 나타난다. 그래도 남섬은 사람보다 양을 보는 게 더 쉽다. 대략 500만명 정도 되는 전체 인구 중 350만명 가까이가 북섬에 살고, 그중 절반은 오클랜드에 모여 산다. 그래서 여행 기점을 오클랜드로 잡은 이들은 예상외의 대도시 오클랜드의 모습에 살짝 당황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차이는 남섬에서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들을 보기가 꽤 힘든데, 북섬에서는 쉽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농장과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은 것 같지만 초기에는 금광과 탄광이 많았던 남섬에 바다 건너 이주해 온 백인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원주민들은 밀려나지 않았을까 싶다. 대신 발달한 도시, 온화한 기후를 따라 마오리를 비롯한 원주민들은 북섬에 주로 살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때문에 마오리들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려면 북섬을 찾는 편이 낫다.

세 번째 차이는 ‘지형’이다. 뉴질랜드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부분의 지형을 만날 수 있는 지형의 백화점 같은 곳이다. 그중 남섬의 대표선수를 꼽으라면 빙하와 피요르드를 들 수 있다. 마치 백두대간처럼 남섬에 솟아 있는 서던 알프스 산맥 좌우의 프란츠 요제프 빙하와 쿡마운틴 빙하는 여행자에게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해 준다. 물론 뜨거워지는 지구 탓에 빙하가 10년 사이에도 확 줄어 조만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남섬의 남쪽 끝에서 시작되는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은 산 좀 탄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같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에 맞설 북섬의 대표선수는 뭐니 뭐니 해도 ‘화산’이다. 언제 폭발했는지도 모를 흔적만 남은 화산지대가 아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활발한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활화산 지대이자 환태평양 조산지대의 당당한 한 줄기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폭발해 수십 명의 인명 피해를 냈던 화이트섬 화산을 비롯해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로토루아 지역, 더 남쪽으로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왕 ‘사우론’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모르도르 지역을 닮은 통가리로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북섬의 차이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즐기는 방식에서도 알게 모르게 차이가 나는 듯하다. 뉴질랜드는 뉴질랜드 관광청에서 내세우는 말 그대로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남섬·북섬을 가릴 것 없이 번지점프부터 제트스키·카약·낚시 등등 온갖 종류의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남섬에서는 자연의 친구들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들이 많다. 카이코우라에서 물개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 해안 야생동물 투어라고나 할까.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 만나는 오마루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고된 하루 노동을 끝내고 퇴근하는 블루펭귄 무리의 처연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조금 더 남쪽 더니든 근처의 앨버트로스 센터에서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떠다니는 어른 앨버트로스와 아직 솜털도 채 빠지지 않은 새끼 앨버트로스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해안을 타고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캐니벌만 끝자락의 작은 해변에서는 모래사장 위에서 인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쉬고 있는 수십 마리의 바다사자 무리를 만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와 눈이 마주치는 듯한 경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해 북섬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 체험들이 가능하다. 오클랜드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스카이타워, 뉴질랜드에 오면 한 번씩은 해 봐야 한다는 양털 깎기가 가능한 아그로돔 체험, 동굴 속 신비한 발광 생물을 보며 우주를 느끼는 와이토모 동굴 체험, 그리고 <반지의 제왕> 덕후들에게는 인증 코스와도 같은 호비튼 마을 체험까지 마치고 나면 마무리로는 펄펄 끓는 유황온천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뉴질랜드의 남과 북, 두 섬을 비교해 보면 대략 여행의 방법이 나온다. 남섬은 캠핑카를 타고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여행이 제격이다. 가다가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자리를 펴고 늘어지기에 이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북섬은 승차감 좋은 승용차나 밴에 몸을 싣고 놀거리가 준비돼 있는 지점과 지점을 이어 나가는 휴양을 위한 여행이 좀 더 어울린다.

빠르고 바쁜 젊은이들은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를 넘나들며 남북섬을 2주일 안에 완전정복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적당히 늙어 버린 몸과 아직 짱짱한 마음만 있는 이들은 그 두 배는 시간을 가져야 같은 길을 겨우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취향과 나이 등등에 따라 여행의 모든 사정은 달라지니까 정답은 없기 마련.

여행작가 (ecocjh@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