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2008년 초여름 대한민국은 10대가 불붙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로 뜨거웠다. 전통적 시민사회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 위력 앞에 주변부만 얼쩡거리며 어찌할 줄 몰랐다. 무대에 오른 10대는 꼰대 운동권이라면 절대 부르지 않을 박정희·전두환 개발독재를 미화 찬양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목청껏 부르며 흥을 돋웠다. 가사 내용은 훗날 정수라 본인도 이 노래를 부르는 게 싫었다고 고백할 만큼 일방으로 토건세력을 칭송했다. 그럴수록 군부독재정권은 TV에 이 노래를 더 자주 틀었고, 전 국민이 가사를 외울 만큼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오랜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민중과 저항하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일거에 제압했다.

2008년 광화문광장 촛불에게 이 노래는 단지 시위의 분위기를 올리는 촉매제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이 노래가 가진 역사성은 낡은 유물에 불과했다. 당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있는 언론노조에서 열렸다. 중집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촛불에 참가하려고 일부러 가까운 장소를 잡았다. 그러나 회의는 길어졌다. “집권 6개월밖에 안 된 이명박 정부 퇴진을 내거는 건 무리다. ‘사과’ 정도로 하자”는 현실론과 “대중의 요구가 불타올랐을 때 싸워야 한다”는 또 다른 현실론이 맞붙었다.

회의는 6월의 긴 태양이 다 저물도록 공전을 거듭했다. 18층에서 내려다본 광화문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였다. 회의를 뒤로하고 내려온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꼰대 운동권은 ‘퇴진’이란 두 글자를 놓고 몇 시간째 입씨름 중인데 광화문 젊은 촛불들은 저마다 ‘MB OUT!’이라고 쓴 종이를 손에 들었다. ‘퇴진’과 ‘사과’의 긴 논쟁을 ‘OUT’이라는 해학으로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렇게 꼰대 운동권은 촛불항쟁 내내 촛불에 끼어들지도, 외면도 못한 채 주변을 맴돌았다. 간혹 젊은 운동세대와 연대한다며 멋모르고 깃발 든 채 광장으로 진입했던 몇몇 노조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깃발 내려” “민주노총은 빠져”라는 거센 항의에 놀랐다.

그렇다고 광화문광장 촛불이 늘 지고지선은 아니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만든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수년째 힘겨운 싸움을 해 오다 광화문에 모인 젊은 청춘들에게 연대를 요청했지만 “노조는 빠져”라는 혹독한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직접민주주의로 향해 한없이 크게 열린 공간인데도 연대는 옹색했고 그 틈을 몇몇 ‘관종’이 메웠다. 나는 거기서 진중권을 처음 봤다. 그는 늘 “진 교수님 나가십니다. 비켜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젊은 세대의 호위 속에 등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팬덤의 끝은 어딜까 궁금했다.

10년도 더 시간이 흘렀지만 팬덤은 계속된다. “진중권 ‘참여연대는 불참연대 … 與에 붙어먹어’”(조선일보 6월11일자 6면), “진중권 ‘장관 도덕성 검증 비공개? 그냥 잡놈이라 해라’”(조선일보 6월26일자 6면)처럼 요즘 보수언론은 ‘진중권’ 받아쓰기에 열심이다.

또 다른 한쪽에선 ‘유시민’ 받아쓰기에 한창이다. 가뜩이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노동자의 거의 유일한 노후보장책인 국민연금을 한 방에 3분의 1이나 삭감했고, 재임 내내 의료민영화를 만지작거리며 제주영리병원 태동을 예고했던, 뼛속까지 특정 정파만을 신봉하는 정치인 유시민씨를 ‘작가’라 호명하며 그에게 정치색을 지워 주던 것도 언론이다.

한국일보 7월25일자 6면에 실린 “유시민 ‘윤석열, 검언유착 개입 의심 제 식구 감싸기 아닌 자기 감싸기’”라는 제목의 기사는 검찰 반론은 고사하고 유씨조차 제대로 취재하지 않은 채 그가 MBC 라디오에 나와 발언한 내용만 받아썼다.

처음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유시민·진중권 받아쓰기는 시민의 삶과 ‘1도’ 관계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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