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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건 별로 없지만) 대리인입니다신정인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 신정인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상담을 하다 보면 사건의 사실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을 때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사건 진행하는 도중 뒤통수를 아주 세게 맞는 경우가 있다.

긴 상담 끝에 상대방이 100%를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법리적 검토를 위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려 달라는 필자의 마지막 간곡한 요청에도 노동자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단호하게 징계사유를 부인했다.

그동안 사용자가 내린 수차례의 징계를 비춰 보면 취업규칙에도 있는 징계위원회를 대부분 거치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사유로 절차도 거치지 않은 부당해고를 하거나, 영구 2호봉 감봉이라는 법을 위반한 근본 없는 징계들이 대부분인지라 노동자의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사용자는 반성과 사죄가 담긴 시말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근을 배제해 100만원가량의 임금저하를 주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은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기에 모른 척하기도 마음이 걸렸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느냐는 노래 가사처럼 대리인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관계의 중요한 부분은 사용자의 답변서와 객관적 자료들로 비로소 완성됐고 징계사유는 3자가 보더라도 너무도 명백하게 인정된 사안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는 본인에 대한 불리한 상황에 대해 수차례 말 바꾸기를 하다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징계사유를 절대 인정할 수 없으니 징계 사유를 없애 달라고 요청했다. 더 나아가 제척기간이 도과돼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했음에도 종전의 부당한 징계들까지 취소시켜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재차 설명을 해도 그때뿐이고 며칠 후 똑같은 상황이 자꾸 반복이니 대리인으로서 속 터질 일이다. 부끄럽지만 초능력이 있다면 시간을 돌려 노동자가 사무실을 방문한 날 연차를 써서 해당 사건을 맡지 않겠다는 터무니없는 다짐을 할 정도로 해당 사건을 진행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노동자에 대한 마음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객관적인 자료상 일정 부분 사실로 존재함에도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사용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노동자의 주장은 망상처럼 들렸다. “이 사람 때문에 회사가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노무사 당신이 알아? 그래 놓고 이딴 작자(?)의 편을 드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냐”는 회사 관리자의 막말이 오간, 실패로 끝난 화해권고회의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런 당신들은 내 마음을 아느냐’고 외쳐 봤으나 그들에게 닫지는 않았으리라.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은 구제신청 심문회의가 늘 그렇듯이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무수한 말들과 노동자에게 온갖 비난을 일삼는 사측 행태에 공익위원들의 인내심 한계가 도달한 즈음 심문회의가 끝났다.

공익위원의 따끔한 질책에 벌겋게 상기된 대표이사가 심문회의 직후 노동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질하며 자신에게 공손하게 인사하지 않은 돼먹지 못한 놈이라며 분풀이를 하는 모습을 보자 “사업장에서 억압받는 일을 당한 적 없는 노무사는 내 심정을 모를 것”이라는 노동자의 말이 눈에 보였다.

그 손가락질 하나로 그가 받은 부당함을 여전히 모두 알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왜 그토록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심문회의만 끝나면 더 이상 볼일 없다고 다짐했던 나는 또 다른 징계 처분을 대리해 사건을 진행 중이고, 여전히 귀담아듣지 않고 딴소리 중인 노동자 때문에 속앓이하는 중이지만, 예전처럼 밉지는 않다고 살짝 고백해 본다.

신정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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