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유통산업 현장이 위험하다. 올해 4월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현장 화재로 38명이 숨졌다. 5월에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급기야 지난 21일에는 용인 SLC물류센터에서 불이나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택배노동자들의 잇단 과로사 추정 사망도 빼놓을 수 없다. 물류산업이 팽창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는 반면 안전보건대책은 부실해 보인다. 물류·유통산업 노동자들은 사고·감염·장시간 노동에 노출되고 있다. 그들에게 직장은 죽음의 일터, 공포의 일터가 돼 가고 있다. 그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비정규직 몰려 사고위험 높아, 파편화한 고용구조 해결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물류운송 분야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연달아 터지고 있다. 산업과 종사 노동자 증가에 비해 안전과 건강권에 대한 대책은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류운송 노동자들은 대체로 분류·상차·하차·운송·배달 작업을 하게 된다. 크게는 물류센터 안에서의 노동과 운송·이동노동의 범주로 나뉘게 된다.

종합적인 실태조사조차 없는 상황이지만 산재 다발의 원인은 첫째, 하청·특수고용·단기 고용 등 비정규 고용형태가 집적돼 있기 때문이다, 파편화한 고용구조는 아무도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로 노동자를 몰고 간다. 둘째, 현재의 안전보건 대책은 고정 사업장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운송·이동·방문노동에 대한 안전보건 대책이 없다. 셋째, 물류센터를 창고처럼 취급하며 시설관리 측면으로만 생각해 왔던 관성이 원인이다. 변화한 산업동향에 대한 감독과 점검이 전무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물류운송 노동자의 파편화된 고용구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런 고용구조는 기본적인 위험경보·방역을 어렵게 해 위험을 가중시킨다. 물류센터 같은 곳에서는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원청의 안전책임을 명확히 하고, 직접 안전·보건조치를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하청·특수고용 노동자가 재해예방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증가하고 있는 창고형 물류센터는 주로 외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감독과 점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자 참여 활성화를 통한 일상적 예방체계, 지자체와 연계한 점검·감독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과로사·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대한 업종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입차주 형태가 많은 버스 운송업의 경우 별도의 고시를 제정하고 있다, 물류운송 노동자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노동시간단축 방안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무한경쟁이 가속화하는 물류운송 시장에서 과로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동·방문노동자, 운송 분야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와 관련해 종합적인 별도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사업장을 벗어난 장소에 대해서는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명시되지 않는 현행 제도는 변화한 산업구조를 반영하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사고위험 증폭, 일제 조사·교육 필요해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물류창고 화재는 산업안전보건법 영역이기도 하고, 소방법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에 용인에서 발생한 사고는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방법을 어겼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현장 공간은 밀폐에 가까웠을 거다. 환기나 대피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은폐됐을 수도 있다. 물건이 많이 적재돼 통로를 확보하기도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언

제든 화재와 같은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직원들이 알고 있어야 했다. 대피로를 확보해야 했는데 그리 안 됐을 것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대피를 하다가 사망자 다수가 발생했다는 중간 조사 발표가 있었다. 사업주가 화재 발생에 대비한 교육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없었을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로 물류산업이 크게 확장하는 과정에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배달노동자는 과로로 숨지고, 물류창고 건물을 짓던 노동자들은 화재로 숨지고, 그 안에서 일하던 노동자도 산재로 숨졌다. 산업이 커지고, 업무량이 많아지는 과정에서 신규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물류창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특별연장근로(인가연장근로)를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일부 산업영역에서 이전보다 업무량이 폭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곳은 장시간노동에 따라 이전에는 없던 위험이 점점 쌓여 가기 시작한다. 위험이 커진 만큼 안전보건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정부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장시간노동을 허용했으면, 보완책도 내놔야 위험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지금은 위험만 높이는 정책뿐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빨리 고쳐야 한다. 노동부는 위험이 누적되고 있는 현장에 대해 일제 조사를 나가야 한다. 작업자와 사업주에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고는 날 수도 있지만, 사고로 인명 손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사고가 나더라도 생명을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근본문제 해결 없으니 참사 반복, 처벌강화가 해답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실장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 지 석 달도 채 안 돼 용인시 물류센터에서 또다시 일어났다. 이어 인천 서구의 화학사업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희생됐다. 이외에도 프레스에 끼여 사망한 노동자, 굴삭기 버킷에 맞아 사망한 노동자 등 중대재해로 지금도 노동자의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용인 물류센터 화재 참사의 경우, 작업장 천장에 설치된 냉방용 쿨링팬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는 증언이 나온다. 이전에 지속적으로 쿨링팬에서 타는 냄새가 발생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문제제기에 적절한 조치만 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너무나 안타깝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합동감식을 벌인 만큼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앞으로 규명이 될 것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다수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기본적인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아 5명이 죽고, 8명이 다치는 참상의 인과관계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부와 국회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이후 사후 조치에만 급급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은 미흡했다. 그 결과 계속해서 막을 수 있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죽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대표자에 대한 처벌이 그 고리를 끊는 해답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로 지적된 기업과 대표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을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사망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법안이 반드시 입안돼 통과돼야 한다. 이런 바탕이 있을 때 계속해서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이 비로소 멈출 수 있다.

정부의 역량부족이 원인, 사회가 심각성 인식해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최근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지난해 통계에선 전년도와 대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감소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 산재사고 추세를 보면 지난해를 앞지를 걸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위축돼 산재사고도 더 줄어들 걸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위기시에는 산재사고도 감소하는데, 올해는 이 같은 일반적인 패턴을 벗어난 특이상황이다. 명확한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원인을 명확하게 짚는 것은 어렵지만,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은 있다. 정부의 역량부족이다. 정부의 역량이 코로나19 예방과 관리감독에 집중돼 기존에 이뤄지던 노동 분야 관리감독에 공백이 생겼을 우려가 있다.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야 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이어 국내 코로나19 방역의 특수성도 일정한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억제해 온 대표적인 국가다. 이 과정에서 유달리 특수를 누리는 독특한 현상이 빚어졌다. 잇단 택배노동자 산재사고도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이 활성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짐작된다. 이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 혹은 부재가 겹쳐 산재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 해외는 경제와 사회가 거의 정지한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특수를 움켜쥐려는 기업의 공격적인 경영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가설을 토대로 현재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산재사고 급증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정부의 심각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코로나19 감염위험이 있다며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거나 요식행위로 진행했던 지점들이 분명 있다. 이를 시정하고 관리·감독을 더 활발히 해야 할 때다.

국회 차원의 노력도 요구된다. 정부와 사회가 노동환경의 위험이 급증했다는 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특별청문회를 여는 등 공론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산재사고 증가 추세가 코로나19 만큼 심각한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사회가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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