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CJB청주방송이 23일 고 이재학 PD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사내 비정규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개선도 약속했다. 비정규직 스태프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14년간 일한 직장에서 해고된 고인과 노동·시민·사회가 연대해 남긴 성과다. 국내 방송사가 방송 노동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고용조건 개선을 약속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합의가 방송사 비정규직 활용관행 변화에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인의 ‘정규직’ 지위 인정
사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규명·책임자처벌·명예회복·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4자 대표(유족·언론노조·청주방송·대책위)는 이날 오전 청주 서원구 청주방송에서 4자 합의서를 공개했다. 사측은 “고인의 사망에 책임을 통감하고 고인의 명예회복과 사내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을 이행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6개 분야·27개 과제가 제시됐다.

‘공식사과·책임자 조치’ 분야에는 이두영 전 청주방송 대표이사의 사과가 담겼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고인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내용도 포함한다. ‘명예회복과 예우’ 차원에서 고인의 일터에 ‘정규직 명패’를 2주간 비치하기로 했다.

고인은 프리랜서 동료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2018년 해고당했다. 그해 “방송 비정규직을 위해 선례를 만들겠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주방송쪽 위증과 동료들의 증언 번복으로 고인은 1심에서 패소했다. 고인이 생을 등진 원인이 됐다.

고인의 바람대로 청주방송은 비정규직 9명을 2022년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AD 직군(3명)과 MD(4명), 자회사인 엔터컴 소속(2명)이다. 9명의 작가는 이달 말까지 TF를 구성해 직접고용 계획을 마련한다. 방송노동자는 아니지만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도 촉탁직으로 전환해 고용하기로 했다.

다른 방송사 비정규직에 영향 미칠까

이번 합의가 방송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이행안에 담긴 내용도 CJB청주방송 범위를 넘어선다. 대책위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방송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한 내용을 전달하기로 했다. 방송사 재허가 조건에 고용구조 건정성 기준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담겼다. 방송국 내 비정규직과 방송프로그램 제작 인력에 대한 고용형태 평가 비율을 높이라는 뜻이다.

고 이한빛 PD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이번 합의안은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요구들을 방송계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를 적극 조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14년간 단 한 장의 계약서도 쓰지 않았던 고인의 선례를 바탕으로 방송 비정규직의 오랜 숙제였던 표준근로계약서 내용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는 지난 5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언론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반’ 구성을 결정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번 이행안은 지역민방노조가 정규직화 과정을 점검하고 교섭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됐다”며 “다른 지역방송사들에게도 확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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