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임기 중 두 번의 교섭에 참여했다. 한 번은 한국마사회의 승부 조작 등 비리 행태를 고발하고 극단적인 선택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문중원 기수 건이었다. 100일이 넘게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시신을 두고 난공불락 같은 마사회와 교섭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다. 명절 연휴에도 농성투쟁을 이어 가면서 온갖 노력을 다해서 교섭을 타결하고 열사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추도식에서 그 교섭 결과를 두고 ‘쓰레기 같은 합의서’라고 비난하는 어느 한 동지의 발언을 들으면서 나도 인간인지라 섭섭했다. 차라리 그 당시 교섭 중단을 선언하고 악마 같은 마사회 해체 전면투쟁으로 나가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두 번째는 지금 민주노총 내에서 최대 쟁점이자 논란이 되고 있는 ‘코로나 19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 건이다. 100만 민주노총 임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사회적 교섭 부대표급 협상에 참여했다. 사회적 교섭은 양자 간에 이뤄지는 통상의 노사 교섭과는 아주 달랐다. 국무총리 주재로 한국경총·대한상의·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한국노총 그리고 민주노총 6자가 참여하는 다자 간 교섭이고 각 주체마다 자신들의 원하는 한 가지 요구라도 관철하려는 목표가 집요했다. 물론 큰 방향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간 연대와 협력이었지만 그것을 구체화해 가는 과정은 교섭을 넘어 전투에 가까웠다. 그 전투에서 저들의 요구를 완전히 괴멸시키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어 민주노총 내에서 독소조항 운운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한 만큼 떳떳하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공격하는 야합, 굴욕, 자본의 하수인, 어용 같은 식의 비난은 가슴이 쓰릴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또 생각해 본다. 밥줄 같은 일터에서 자기 목이 떨어져 나가도 말 한마디 못하는 민주노총 밖의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어찌 되든 말든, 향후 민주노총에 대한 고립과 배제가 심각해져서 정부 정책에 대한 개입력이 땅에 떨어져 1노총이 부여받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되든 말든 경영계와 정부에 쌍욕을 하며 교섭 파기를 선언하고 뛰쳐나왔어야 했을까.

이번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사실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어느 주체도 적극성을 가지고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민주노총이 끌고 가야만 했던 교섭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대규모 현장투쟁·대중투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교섭단은 힘겨운 교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대화의 기본이라고 하는 고용보장과 임금을 교환하는 방안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처음부터 논외였다. 따라서 더 큰 의제를 쟁취하기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임금동결·임금반납 같은 현찰과 실탄도 없었다.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등과 바꿔 먹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도 부족했다. 원포인트 협상인 만큼 마냥 길게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계속 무너져가는 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해 보다 신속한 대책 수립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6월30일, 늦어도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일 마지막 날인 7월3일까지는 1차 마무리가 불가피했다. 물론 필요하면 그 이후 2단계 협상의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이 고약한 조건을 핑계로 사회적 대화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코로나19 위기에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으로서 민주노총 울타리 밖에 있는 90% 미조직 노동자들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원포인트 사회적 교섭을 하자는 데는 우리 모두가 다 동의하지 않았는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조건에서 다들 합의안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교섭 결과를 내놓았다. 교섭에 참여했던 실무책임자이자 당사자로서는 최종안에 대해서 충분히 찬반 토론을 하면서 조직적 입장을 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중앙집행위원회 등 논의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반노동 반민주 수구세력인 미래통합당에게는 당연히 기대할 게 없다. 하지만 180석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독주 속에서 노동자가 원하는 입법을 촉진하고 정부정책이 올바로 추진되도록 개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포함한 노정교섭·산별교섭 등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기업 교섭은 꼭 필요하다. 특히 민주노총이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더 사회적 대화 방식에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최종안을 부결시키고 투쟁에 나서자고 한다. 정말이지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최종안을 부결시키면 안 되던 투쟁이 조직되는가? 이걸 사다리로 해서, 고리로 해서 더 큰 투쟁을 만들어 가는 게 노동운동의 정석 아닌가? 교섭과 투쟁은 노동운동에 있어 동전의 양면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비판과 견제가 필요하다. 그 비판과 견제 그리고 토론이 우리의 단결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감내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에 미조직 노동자·취약계층을 위한 합의안에 왜 이렇게까지 논란과 갈등이 과도하게 발생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정파·선거 구도 이런 것에는 ‘1도’ 관심 없다. 혹여나 이런 이유로 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합의’ 최종안이 난도질당하고 폐기된다면 정말 지금 여기 민주노총에 있는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23일 1천500 대의원들의 후회 없는 선택을 기대한다. 최종안과 해설자료를 꼭 읽고 판단하면 좋겠다. 대의원 찬반토론회도 좋은 판단의 근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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