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4일, 한국판 뉴딜 발표가 있었다. 이미 그 주요 내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터라 그 발표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국민보고대회 형식으로 대통령까지 직접 참석해 대대적으로 진행한 정부 차원의 행사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임기 후반으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이 코로나 시국에서 나아갈 정책 방향을 종합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그저 무심히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연설 전문을 읽고 한국판 뉴딜을 생각해 보았다.

2. 언제나처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 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기조연설문은 코로나 위기 극복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국민 여러분’에 찬사를 보냈다. 이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약속으로, 한국판 뉴딜의 담대한 구상과 계획을 발표”한다며 이는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이며,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대통령 기조연설문을 읽고 보니, 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정책을 넘어 그야말로 새로운 100년으로의 대전환을 위한 대한민국의 정부정책이라고 읽게 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경제를 선도형으로, 저탄소 경제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도 도대체가 어떻게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대전환시키겠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나는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었다.

3. “튼튼한 고용·사회안전망을 토대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세워, 세계사적 흐름을 앞서가는 선도국가로 나아가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기조연설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말은 정부는 한국판 뉴딜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용 및 사회안전망을 갖추고서 할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계속해서 문 대통령은 ‘데이터 댐’ ‘인공지능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산단’ 등 10대 대표사업이 이끌게 될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도 2022년까지 89만개, 2025년까지 190만개가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민 대상 고용안전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노력과 함께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완전 폐지하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의 시범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도 한국판 뉴딜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안전망을 갖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통해 분명히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지만, 그 뉴딜로 인해 기존의 기업과 산업은 구조조정 될 것이라서 그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은 당연하다. 한국판 뉴딜이 대규모로 추진될수록 그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도 대규모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이 한국판 뉴딜의 기조연설에는 이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은 “일자리가 필요한 국민들께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국민여러분에게 한국판 뉴딜이 일자리 기회를 줄 것이라는 희망만 말하고 있었다. 혹 누군가는 대통령의 기조연설에서 고용안전망을 언급한 것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용안전망은 일자리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없다. 그건 일자리 잃은 국민의 생존에 대한 희망일 수 있을 뿐이다.

4. 디지털 뉴딜이 추진될 경우 그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작업 공정을 디지털화해서 생산성 향상 등 효율화로 나아갈 것이고, 그린 뉴딜 추진으로 기존 작업 공정에 변경이 발생할 수가 있다. 종전 작업물량을 유지하는 경우라면 필요치 않은 인력이 발생하게 되고 기존 인력 퇴출이든 아니면 신규 채용 축소든 인력 감축으로 귀결될 것이다. 생산성 향상분만큼 작업물량을 확대하는 경우라면 기존 인력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 경우에도 인력 재배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어찌되든 한국판 뉴딜은 우리 사업장의 노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노동자에겐 이에 대응할 법이 없다. 한국판 뉴딜이 사업장에 몰아닥칠 때에 자신의 고용 등 권리를 위해 노동자가 대응할 무기가 없다. 사업장에서 뉴딜의 추진도 사용자 자본의 권한으로 보장돼 있는 것일 뿐,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관여는 보장하고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동의절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반수노조가 존재하더라도 우리의 경우 기존 단체협약은 사용자의 뉴딜 추진에 맞설 수단을 규정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사용자의 사업 구조조정 등에 노동자가 관여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고 있지 않으니 한국판 뉴딜이 사업장에서 추진될 경우 노동자에겐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하나의 사업장 내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산업 단위로 대대적으로 추진될 것인데,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그에 대응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물론, 각종 산업별로 노조가 조직돼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산업 노동자를 대표할 정도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기껏해야 20% 미만으로 조직된 노조로는 해당 산업자본의 한국판 뉴딜 추진에 대응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위 사업장의 경우처럼 그 대응할 법도 없다.

5. 1933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정책이 바로 뉴딜이었고, 바로 그 뉴딜의 말을 따 오늘 이 나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추진을 밝힌 것이다. 막대한 재정투입에 의한 테네시 유역개발을 비롯한 대규모 댐 건설 등으로 일자리 창출과 사회간접 자본 확충이라고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당신은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와그너 법(Wagner Act)을 제정해서 노조의 조직력을 강화하고 단체교섭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를 위해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설치됐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조합원수가 급증하고 미국 노동운동의 전성기가 열렸다. 노인수당·과부수당·실업보상·노동장애자보험 등이 담긴 사회보장법을 마련하고, 일부 산업체에는 최장 근로시간제와 최저임금을 정했다. 그야말로 오늘 미국은 물론, 이 나라에서 노동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도들, 즉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목록들을 쏟아냈다. 1930년대 뉴딜은 단순히 재정투입 등 국가권력의 경제개입 강화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본에 대한 노동의 강화를 추진했던 정책이라고 기억돼야 한다. 그리고 뉴딜은 무엇보다도 노동자 스스로 사용자 자본에 대항해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노동자들이 보다 큰 규모로 조직해서 사용자 자본에 맞서 노동자 권리를 확보할 수 있고 교섭과 투쟁을 할 수 있는 법을 마련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6. 그런데 한국판 뉴딜은 노동에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위 기조연설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것들을 보면, 전 국민 대상으로 고용보험 확대 추진을 한다는 것 말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추진을 돌아보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는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으로 최장 근로시간으로 기능하기 어렵고,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사과하고 이행을 포기했으며,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공약도 아직까지 이행되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를 위하겠다,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말들은 넘쳐났어도, 이 나라 노동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해 줬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에겐 사용자 자본의 한국판 뉴딜 추진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위해 대응할 수단인 법이 없다. 그러니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약속한 대통령으로서는 한국판 뉴딜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이 나라 노동자에게 법으로 구체적으로 말해 줘야 했다. 읽고 다시 읽었지만, 한국판 뉴딜 기조연설문에서 찾지 못한 나는 이제 이 나라에서 뉴딜 추진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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