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지록위마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행위를 일컫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임시대의원대회 자료집을 통해 이번 합의에는 “코로나19 위기 시대에 취약계층 노동자, 사각지대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유지와 전 국민 고용보험,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로서 상병수당 도입,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의 길을 여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간접고용·특수고용·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번 합의가 위원장이 말하는 만큼 큰 의미가 있는 합의서라고 여기지 않았다.

김명환 위원장이 합의한 노사정 합의 최종안은 이미 비상경제회의 결과나 정부·여당의 입법추진으로 발표된 정부정책을 미화하고, 기업에 면죄부와 온갖 지원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 사실상 별 내용도 없는 합의를 두고 ‘백신’이라는 둥 마치 엄청난 성과를 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합의안이 가결돼야만 하반기 투쟁도 할 수 있다며 부결시 위원장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노사정 합의안은 노동자들에게는 협력과 협조를 강조해 또다시 불균형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 “매출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협조 한다”고 명시했다. 위기상황에도 이윤보전에만 급급한 경영계에 어떤 상황에서도 협조하라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무색하게 한국게이츠·이스타항공·힐튼호텔·홈플러스 등 기업들은 일방적인 폐업과 해고를 예고했고,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던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정부가 직접 나서 노동자를 우롱하고 있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나. 최저임금은 사상 최저 인상률을 기록했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빌미로 정부는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동법 개악안을 국회에 보냈다. 또한 정부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줄이기는커녕 특별연장근로를 연장한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고무줄 노동을 강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입법을 추진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정부입법안을 예고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 과정에서 재계가 요구한 ‘비대면 진료’를 민주노총이 강력하게 반대해 삭제했더니, 대통령이 나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의 중점과제가 ‘비대면 진료체계’형성이라 한다.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가 얼마나 뻔뻔한 거짓인지 그 허구성을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25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투쟁을 전개했다. 기업과 정부와의 투쟁도 있었지만, 조직의 민주적 절차와 운영을 만들기 위한 투쟁도 적지 않았다. 자주성과 민주성을 더 곧게 세우려 한 것은 그래야 더 굳게 단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명환 위원장의 독단과 독선은 민주노총의 단결을 망치고 있다. 그 역사적 책임은 엄중할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지금 즉시 ‘합의안 승인’을 위한 폭주를 중단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 최종안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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