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이츠 라이더가 사용하는 업무용 앱 ‘쿠팡이츠 쿠리어’의 한 장면(사진 왼쪽). 지도 오른쪽 상단을 보면 도착 예상시간이 표시돼 있다. 쿠팡이츠 라이더는 이 앱에서 자신의 평점을 확인한다(사진 오른쪽). <라이더유니온, 매일노동뉴스 재구성>
쿠팡이 쿠팡이츠 라이더의 사고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을 받았던 ‘고객·매장 도착 예상시간’ 표기를 없애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이츠 라이더가 배달업무를 수행하면 업무용앱 ‘쿠팡이츠 쿠리어’는 지도 오른쪽 상단에 라이더 위치에서 음식 픽업장소(매장)까지 도착 예상시간과 픽업장소에서 고객이 있는 곳까지 도착 예상시간을 표기했다.

19일 쿠팡은 “안전한 배송을 위해 예상시간 표기를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다. 테스트 기간 동안 일부 라이더에게는 고객·매장 도착 예상시간이 이전처럼 표기되지 않는다. 쿠팡은 도착 예상시간 표기 여부가 라이더의 업무처리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표기 삭제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라이더유니온(위원장 박정훈)은 쿠팡이츠 라이더 업무용 앱인 ‘쿠팡이츠 쿠리어’에 표기되는 도착 예상시간이 일반 내비게이션보다 짧게 책정돼 라이더들이 시간 압박에 시달리며, 그로 인해 사고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애초 배달 약속시간 내 도착률(고객·매장)이라는 평가항목을 표기하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쿠팡의 프로그램 삭제 조치는 노동계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정작 이 같은 조치만으로 라이더들의 사고 위험과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라이더는 고객에게 배달시간, 음식의 상태, 친절도 등을 실시간으로 평가받고 쿠팡은 고객 평가를 토대로 라이더의 배차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쿠팡만 아는 알고리즘, 배제된 노동”

쿠팡이츠 라이더가 일을 시작하려면 필수적으로 동의해야 하는 ‘배송사업자 이용약관’이 있다. 이용약관에 따라 쿠팡 라이더는 배송사업자가 된다. 그런데 쿠팡이츠 쿠리어 앱에 로그인·로그아웃해 출퇴근을 결정하는 것 외에 라이더가 누리는 자율성은 거의 없다. 라이더는 쿠팡이 만든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쿠팡이츠 라이더는 콜을 직접 선택할 수 없다. 쿠팡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라이더에게 콜이 자동 배정되는 시스템이다. 다른 회사에서처럼 라이더가 픽업장소와 배달장소, 주문 음식 등 기본적인 정보가 담긴 주문 목록을 보고 경쟁하듯 원하는 콜을 선택하는 ‘전투콜’방식과 다르다.

문제는 수락을 거절할 경우 페널티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라이더는 음식 픽업장소·배달장소·음식의 종류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한 채 ‘수락’을 누를 수밖에 없다. 배송 과정 중 음식물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 라이더들이 기피하는 커피 같은 음식, 이동거리가 멀고 수익률이 낮은 콜을 피할 자유는 없다.

반면 고객이 평가한 배달 평점이 배차 알고리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다. 고객은 △늦게 도착 △흘렸음·훼손됨 △음식 온도 △배달 요청사항 불이행 △불친절 △다른 메뉴 배달 △기타 등의 항목으로 쿠팡이츠 라이더를 평가한다.

지난해부터 쿠팡이츠 라이더를 전업으로 하고 있는 김형식(가명)씨는 “조리시간이 길거나 (오토바이에) 실을 수 없는 음식인지 여부는 픽업지에 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며 “18인치 피자처럼 부피가 큰 제품인 경우 배달통에 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리해서 운행하다 음식이 잘못되면 음식값뿐만 아니라 받아야 할 배달료도 환수되고 모두 라이더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라이더가 픽업장소까지 가서 음식을 배송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거부할 수는 있지만, ‘배달완료율’ 지표 평가점수가 깎인다. 향후 배차에 페널티를 받을까 봐 라이더는 십중팔구 배송 거절을 망설이게 된다.

“깜깜이 평가에 답답한 라이더”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약속시간 내 도착률(매장·고객)’이라는 평가 지표는 더 이상 라이더들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라이더들은 여전히 해당 지표로 평가받는다고 믿는다.

김형식씨는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배달시간 평가항목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보이는 평가가 다라면 수락률과 배달완료율이 모두 100점인 라이더가 먼저 배차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라이더가 먼저 콜을 배차받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깜깜이로 운영되다 보니 라이더들은 자신에게 물량이 배정되지 않는 이유가 주문량이 적어서인지, 고객의 평가가 영향을 미쳐서인지 알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최근 100건의 배달 기준으로 배달 평점(100점 만점)이 결정되는데 ‘빨강’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애쓸 뿐이다. 쿠팡은 업무용 앱에 ‘빨강’을 “개선할 여지가 있으며, 업무가 위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로 설명한다. 라이더의 배달 평점은 녹색(최고의 배달 파트너입니다!)·노랑(좀 더 노력해 주세요)·빨강으로 구분된다.

일방적인 평가를 받는 노동자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쿠팡이츠 노동자가 라이더유니온에 고충을 토로한 글을 보면 이것이 잘 드러난다. 쿠팡이츠 라이더 ㄱ씨는 “고객이 주문을 취소한 것인데 왜 배달완료율이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ㄴ씨는 “매장에서 조리지연돼 30~40분 기다리면 한 시간 최저임금도 안 나온다”며 “조리지연 사실을 알려도 고객센터(‘쿠팡이츠 배달파트너’로 불림)는 ‘취소시켜 드릴까요?’라고만 묻는다”고 답답해했다. 주문 수락을 취소하면 배달완료율이 떨어져 라이더만 피해를 입는다. 쿠팡이츠 노동자 ㄷ씨는 수락률 86%, 배달완료율 96%를 기록했지만 배달평점은 89점으로 ‘빨강’으로 표시됐다.

쿠팡이츠 라이더 김영빈(36)씨는 “고객이나 매장은 라이더를 평가할 수 있지만 라이더들은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는 매장을 평가할 수조차 없다”며 “마찰이 있다면 고객센터와 쿠팡이 중재해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이더들이 권리는 없고 의무만 진다는 불만이다.

박정훈 위원장은 “노조 요구에 쿠팡이 조치를 취한 점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노조와 대화를 하며 (고객·매장 도착 예상시간 같은 지표를) 평점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언 내지는 협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의 정보 독점을 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며 “(라이더들에게도) 알고리즘에 대한 데이터 접근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쿠팡 관계자는 “안전한 배송을 위해 예상시간 표기를 테스트 중”이라며 “쿠팡은 안전한 배송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