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행 3년을 맞았다. 1단계 기관인 중앙행정기관·지방공기업·지자체 비정규직 20만5천명 중 94.2%(19만3천252명)가 정규직이 됐다. 이 가운데 4만978명(23.6%)는 공공기관이 설립한 자회사 소속이 됐다. 4명 중 1명 꼴이다.

그렇다면 자회사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19일 공공노련에 따르면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 다수가 처우개선 가능성에 낮은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연맹이 발주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 운영 개선방안과 입법과제’ 연구용역 결과다. 연구를 맡은 유병홍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연맹 소속 자회사 8개 기관 노동자 785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자회사 전환으로 고용안정
그러나 처우개선은 ‘안갯속’


조사 결과 61%가 자회사 전환 이후 고용이 보장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안정성에 비해 처우개선 속도는 더뎠다. 자회사 전환 이후 47.9%는 임금이 인상됐다고 답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응답도 23.5%를 차지했다. 자회사가 앞으로 처우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낮았다. 응답자의 62.5%가 자회사의 처우개선 한계를 지적했는데, 원인은 재원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인식은 자회사의 노사를 가리지 않고 공통되게 나타난다. 한국전력공사의 시설·경비·환경미화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 한전에프엠에스㈜의 위어량 경영지원단장은 “설립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해 사무실을 임대하고 책상 몇 개 샀더니 바닥이 드러났다”며 “자본금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일반관리비로만 지출하도록 해 노동자 처우개선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에프엠에스는 한전이 100% 출자해 기존 270여개 용역업체 노동자 1천900명을 고용한 자회사다. 용역업체 시절에는 300명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은 없었다. 위어량 경영지원단장은 “지난해까지 주 68시간 근무를 했는데, 자회사 설립과 동시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비롯해 대기업 수준의 노동관계법을 준수해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이 자회사 출범 이전에 맺은 것이어서 이런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아 체불 위험이 크고 향후 몇 년간 어려움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조건 좌우하는 모회사
자회사 노사와 함께 3자 공동교섭 나서야


자회사 처우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물었더니 응답자 40.1%가 ‘자회사가 유지·존속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를, 24.7%가 ‘자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책임과 권한 부여’를 선택했다. 유병홍 객원연구위원은 “자회사는 설립이 쉬운 만큼 폐지도 쉽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자회사가 존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모회사 정관에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회사의 필요설비 이관이나 자회사 제공 서비스 영역 구체화 등 자회사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유 객원연구위원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고용안정으로 ‘잔치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를 통해 처우개선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회사의 단체교섭 모델 선호도는 모자회사 노사 4자 공동교섭 모델은 29.3%, 자회사 노사와 모회사 경영진이 참가하는 3자 공동교섭 모델이 46.2%로 조사됐다. 정규직노조의 지원 혹은 견제 우려를 현실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모회사 경영진이 스스로 교섭에 참가할 가능성은 낮다. 유 객원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의 지침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며 “총연맹이나 상급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공공기관 운영지침 등에 ‘모자회사 노조 공동교섭 활성화’를 요구하고 관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단체교섭뿐만 아니라 모자회사 공동노사협의회, 현장단위 공동노사협의회 같이 다양한 수준의 노사협의를 하라고 제안했다.

연맹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김주영·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공공부문 정규직화 다시 보기-자회사 운영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고 열띤 논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정향우 기획재정부 공공정책총괄과장은 “자회사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공감하지만 재원이 충분하지 않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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