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올해 부활절은 신자가 아닌 내게도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성당과 박물관에 들어가려고 늘어섰던 사람들의 긴 줄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리케이트들만 눈에 띄었다. 성당 앞쪽에 마련된 제단에 홀로 선 교황의 모습은 마치 가상현실 게임장에 서 있는 플레이어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어쩌면 교황은 그 텅 빈 광장을 신자들의 환영으로 가득 채우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남준 같은 비디오 아티스트가 있었다면, 텅 빈 광장에 태블릿 수천 대를 앉혀 두고, 전 세계 신자들과 연결된 화면을 띄운 채 미사가 열리도록 기획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 19가 만든 사람들 사이의 ‘거리 두기’와 ‘연결되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퍼포먼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직전인 1월 초의 로마여행에서 반나절은 오롯이 바티칸에 쓰기로 미리 계획했다. 하루를 다 잡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여러 여행기들이 있었지만, 판테온을 비롯해서 찍어야 할 좌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깔끔하게 반나절만 쓰기로 한다. 새벽밥 같은 아침밥을 먹고 숙소를 나와 지하철로 대여섯 정거장을 가 옥타비아노역에 내렸다.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곳에, 이 시간에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조조로 바티칸을 볼 사람들이다.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니 그저 그 물결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된다.

이곳은 다른 나라,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려나 주듯 높은 성벽이 바티칸을 둘러싸고 있다. 입구에는 벌써 수많은 깃발이 대기 중이다. 모두 가이드 투어를 알리는 깃발들로, 그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었다. 바티칸 구경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다. 최대한 이른 시간에 예약을 해서 구경하는 것과,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입구에서 표를 받고 오디오 가이드를 꼭 챙겨 받는 것이다. 물론 예약할 때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된 티켓을 사 둬야 한다.

바티칸 둘러보기는 바티칸 미술관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스타나 성당을 거쳐 베드로성당에서 끝이 난다. 부지런히 본다고 해도 반나절은 생각해야만 하는 코스였다. 반나절의 바티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회랑과 천지창조와 사람이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반대편 시스타나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30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긴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아치형 천장과 좌우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건성건성 돌아보며 걷는다 해도 라파엘로의 방 근처에 이르면 목이 뻣뻣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반쯤 지쳐서 도착한 시스타나성당. 영화 <두 교황>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곳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곳이기도 하다. 시스타나성당 전체가 천지창조이기 때문에 막상 들어가서 그림을 대하면 어디를 먼저 봐야 할지 막막해진다. 하느님과 아담이 손가락 끝을 맞대고 있는 익숙한 이미지 하나 찾는데도 고개를 들고 한참을 헤매야 하니 말이다. 다행이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 벽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디오 가이드를 틀고 한 컷씩 따라가며 창조되고 있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한 30분쯤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 그제서야 비로소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웬걸. 그 30분 사이에 성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찼던지 바닥은 빈틈을 찾을 수 없고, 고개를 위로 든 사람들의 머리만 콩나물 대가리처럼 보인다. 그 위쪽으로 가이드 투어를 알리는 깃발들이 흩날린다. 흔들리는 깃발, 콩나물 머리, 소리 낮춰 말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모여 내는 웅웅거리는 진동음에 머리가 아득해지고, 눈알이 퀭해지는 걸 느낀다. 식은땀 몇 줄기가 등 뒤를 타고 내리기 시작하는 것도 같고. 이대로 몇 분만 더 여기에 있다가는 패닉이 올 것 같은 느낌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 물결에 몸을 맡기니 저절로 몸이 출구 쪽으로 옮겨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시스타나성당을 빠져나와 바티칸성당으로 바로 옮겨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바티칸광장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다시 바티칸성당에 들어가려면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야 하는데 말이다. 뭔가 옆으로 빠져 들어가야 할 통로를 놓친 것 같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져 버린 몸은 바티칸성당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다시 줄을 설 엄두가 나지 않은 터라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두고 인증샷 몇 장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서도 한참 동안은 여전히 시스타나성당 안의 그 빽빽함이 온 몸을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안내책자와 여러 블로그에서 바티칸 투어는 아침 일찍 하라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같은 충고를 뒷사람들에게 남긴다. 바티칸 투어는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오전 10시 전에 시스타나성당에서 빠져나오시라고 말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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