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정의당 노동본부,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년 맞이 병원현장 실태증언 및 대안모색 토론회를 열고 있다. <정기훈 기자>

“프리셉터에게 ‘이게 눈에 안 보이냐? 눈깔을 빼서 씻어 줄까?’ 들었다. 두 달 만에 7킬로그램이 빠졌다.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16일 직장갑질119가 소개한 올해 국립대병원 간호사의 ‘태움’ 사례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 시행 1년째, 병원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 내 간호사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태우고, 누군가에게 태워진다고 한다.

“관리자·경영자는 직원과같은 생각 못 가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정의당 노동본부,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1년 맞이 병원현장 실태증언 및 대안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병원 내에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사업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 행위를 하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종희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사용자에게 각종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행정적인 조치조차 규정하고 있지 않아 근로감독관이 사업장 사안에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강경화 한림대 교수(간호학)는 “병원의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관리자·경영자는 일반 직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조사보고서는 서울의료원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직원들의 권리와 안전보다 외형적 성과를 추구해 왔음을 명시한다. 경영진은 수익을 좇는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병원은 인력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여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외부 기관 만들거나
노조 투쟁으로 단협 만들거나


토론회에서는 외부 기관이 직장내 괴롭힘을 조사하고, 노조가 단체협약 등을 체결해 직장내 괴롭힘을 방지해야 한다는 해결책이 제시됐다.

강경화 교수는 조사위원회의 경험을 이유로 “조사위는 (병원) 밖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안을 조사하는 감사실장을 병원장이 임명하는 등 인사권을 병원장이 가지고 있어 직원들이 조사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다. 그는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사례가 외부로 알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나”며 제3 기관의 조사위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직장내 괴롭힘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노조가 있는 병원 노동자들은 “직장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느낀 비율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지난달 7일부터 25일까지 8개 병원 조합원 1천183명과 온라인을 통한 무작위 응답자 137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병원노동자들은 62%가 “직장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노조가 없는 병원 노동자들은 77%가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민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는 단체협약을 두 비교군이 차이를 보인 이유로 꼽았다. 그가 공개한 한 대학병원 단체협약에는 직장내 괴롭힘 행위를 규정하고, 행위가 발생했을 때의 조치와 처리절차가 세부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그는 “노조가 있고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단협으로 세부지침까지 마련돼 있다”며 “문제를 병원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도 “노조가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영민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사용자 제재에 대해 “(사용자 행위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냐는 논란이 있어 사용자 처벌 조항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제재 방안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강은미 의원은 “정의당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다”며 “오늘 논의 사항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만들 것인지 정의당에서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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