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최근 유럽에서는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과 법·제도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2010년 유럽연합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실현을 위한 의무 강화-여성헌장’을 통해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입법과 비입법적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주문했다. 2013년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유럽연합은 연간 5%씩 남녀 간 임금격차를 줄여 2020년까지 완전히 해소하라는 지침도 만들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지난해 3월부터 250명 이상 사업장에서 고용평등에 대한 평가와 개선계획 제출이 의무화됐다. 아이슬란드는 2018년부터 동일임금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2022년까지 25명 이상 기업에 단계적으로 시행되는데, 매년 세금·회계 감사보고서 제출시 동일임금을 증빙하는 서류를 함께 내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성별 임금격차가 덜한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저출산 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남성이 여성보다 시간당 5천69원 더 벌어
‘설명할 수 없는 차별’로 발생한 격차 3천364원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출산 원인은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경력단절을 우려하는 여성들의 출산 기피”라며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를 경험한 유럽 국가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별 임금격차 해소 정책을 공세적으로 펼치는 것은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저출산국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평등 임금공시제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다.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는 압도적으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37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성별 임금격차가 3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2018년 기준 34.1%를 기록했는데 2위인 라트비아는 2014년 기준으로 28.3%로 5.8%포인트 차이가 난다. 20%가 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5개국에 불과하다.

남녀 간 임금격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남성의 근속연수가 더 길다거나, 장시간 교대근무로 가산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차별로 인한 격차가 더 크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를 분석했더니 남성의 시간당 임금이 여성보다 5천69원 많았다. 그런데 교육연수나 직업, 근속연수, 노조 유무, 전일제·시간제같이 격차 발생이 설명 가능한 요인은 1천706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3천364원은 ‘설명되지 않는 차별’에 따른 격차였다. 단지 여자라서 임금을 적게 받는다는 말이다.

“독일 공정임금법, 민간기업 성평등 임금제도 개편 이끌어”

황수옥 연구위원은 최근 유럽 사례 가운데 독일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성별 임금격차는 지난해 기준으로 20%로, 유럽연합 평균보다 높다. 독일은 2017년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공정임금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3가지 제도를 담고 있다. 200명 이상 사업장은 개별적 성별 임금정보 청구권을 보장한다. 한 사업장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의심되면 자신의 임금과 비교 가능한 업무를 하는 다른 성별의 임금 구성과 결정기준에 대한 정보를 청구할 수 있다. 500명 이상 사업장은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기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상법상 경영보고 의무가 있는 기업도 성평등 임금 원칙을 위한 조치를 함께 보고하도록 했다.

황 연구위원은 “사실 독일 200명 이상 사업장에서 개별 임금청구권 행사는 많지 않았지만 제도 시행 효과는 예상 외로 컸다”고 말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민간기업의 60%가 로펌과 컨설팅회사에서 임금 공정성을 위한 자문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가 어려운 이유는 임금체계의 불투명성과 관련 법 개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성평등 임금공시제가 임금격차를 유발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설계된다면 성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인식을 크게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별 임금공시제는 2018년 공공기관 성별 임직원 임금 현황을 공시하도록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개정된 것을 시작으로, 올해 2월에는 민간기업 임금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임금분포공시제 시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재계의 반발로 민간기업 임금정보 공개는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서울시와 고양시가 소속 출연·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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