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6일로 1년이 된다. 애초 법 취지대로 직장내 유무형의 괴롭힘을 막기 위해서는 적용범위 확대와 처벌규정 신설 같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적용범위를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참고할 수 있는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모음집이 나와 주목된다.

관악구노동복지센터는 12일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판례를 취합·분석한 판례모음집을 15일 발간한다고 밝혔다. 센터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와 함께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단어가 포함된 판결문 27개를 검토한 뒤 연관성이 높은 6개 판례를 선정해 분석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들여다보고 국내 법 개선방향을 구체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판례모음집에 따르면 유럽인권재판소는 같은 직급 간 괴롭힘이나 노조간부와 조합원 간 괴롭힘을 인정했다. 직장내 괴롭힘에서 ‘관계의 우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 영국 노동자가 제소한 사건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양성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동료들의 반발로 해고당한 그리스 노동자 사건에서 ECHR은 해당 국가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같은 직급의 동료에 의한 행위라 해도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관계의 우위’를 다수자-소수자로 본 것이다.

노조간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노조간부가 비조합원이나 평조합원을 비난하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공고해 명예훼손으로 해고된 사건에서 사용자의 징계재량권을 인정했다. 노조간부라는 지위가 업무에 따라 회사에 의해 부여된 직위는 아니지만 직장 안에서 조합원들에게 ‘관계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유럽노총(ETUC)은 ‘직장내 괴롭힘 및 폭력에 관한 자율기본협약’을 통해 회사의 규모·활동 분야·고용관계 등에 상관없이 모든 직장과 노동자들에게 직장내 괴롭힘 금지가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제3자 갑질’도 포함하고 있다.

정진아 변호사(법률사무소 생명)는 “현행법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나 5명 미만 사업장이 직장내 괴롭힘에서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언급된 판례는) ‘무엇이 직장내 괴롭힘인지’를 판단할 때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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