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바뀔 수 있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당사자분이 던진 질문이었다. 진짜 바꿀 수 있는지 순수한 궁금증과 ‘이 업계가 원래 그렇지’ 하는 체념이 동시에 담긴 질문이다.

청년유니온은 지난 3월부터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패션어시) 당사자를 만나 왔다. ‘어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주로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인가 보다 어림짐작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사업주라고 볼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고용한 어시스턴트는 대행사에 가서 의상 픽업(빌림)·반납을 도맡아 하고 담당 아티스트의 착장(스타일링)을 본인이 직접 맞춘다. 촬영 현장에서 아티스트에게 의상을 입히고 여기에 촬영 관련 대본 확인이나 수정화장까지 한다. 출퇴근 시간은 아티스트의 촬영스케줄에 따라 변동되고 새벽 출퇴근은 일상이었다. ‘어시’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회사에서 담당 아티스트에 대한 스타일링 업무를 하는 ‘팀원’이었다.

얼핏 봐도 쉼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노동조건은 어떨까. 지난달 초 청년유니온이 진행한 ‘2020년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94.4%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4대 보험에 모두 가입돼 있는 경우는 5.2%에 불과했다. 이들의 월 평균 임금은 97만원에 그쳤다.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11.5시간으로 97.3%가 9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일을 하려는 이유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를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이들의 공통점은 대다수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 왔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옷을 입히는 일,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고교에 진학하거나 대학에서 전공으로 택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학원을 다니고, 여기에 덧붙여 메이크업·헤어스타일링을 배우는 등 부수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실제로 일을 하게 되는 단계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국스타일리스트협회’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구인 글을 보고 지원해서 면접을 본다. 이 과정에서 업계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꿈꿔 왔던 일을 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어시가 된 이들은 업계에서 ‘동생’이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해서 실장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동생이라 불리는 어시는 실장의 강아지도 산책시키고, 쇼핑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술을 마시면 주정도 들어 줘야 했다.

동생이라는 호칭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성을 허무는 동시에 친밀한 사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어떤 사람이 만들어 낸 업계 호칭인지 모르겠지만 동생이라는 호칭부터 고쳐야 한다. 같이 일하는 팀원이지 동생이라고 부르면서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기본적인 노동법부터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방송·미디어산업은 청년 선호도가 높은 직종이다. 수요가 많다는 건 지금 당장 힘들다고 그만두더라도 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노동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개선되기 쉽지 않다. 일하는 사람은 빠르게 바뀌고 업계에 남아서 현장 부조리를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타일리스트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만연한 하도급 계약방식과 도제식 시스템까지 합쳐진 이 업계는 어느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패션어시의 노동이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패션어시가 모였다. 더 이상 ‘업계 관행’이라 불리는 행태를 묵인할 수 없다. 누군가의 꿈을 이용해야만 유지되는 구조, 이제는 거부한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요구하고, 노동착취가 만연한 업계의 구조를 바꿔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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