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유니온이 6일 서울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사자가 얼굴을 가린 채 현장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불리는 A씨는 2018년 ‘스타일리스트 카페’에 올라온 구인구직 글을 보고 지원해 일을 시작했다. 면접을 보던 날 실장은 “알지? 우리 많이 못 줘”라고 말하며 월급 40만원을 주기로 구두로 계약했다. 물론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A씨는 담당 연예인 스케줄에 따라 밤낮없이 일해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 ‘어시스턴트’라는 직함과는 달리, 각종 디자이너 브랜드와 마케팅 대행사를 연결하고 의상 협찬이나 세탁·반납까지 업무를 도맡아 했다. 1년을 그렇게 꼬박 일했는데 임금은 월 10만원이 올랐다. A씨는 “실장님들이 ‘나 때는 다 그렇게 했어’라고 말하면 우리는 ‘실장님도 나처럼 일했는데 결국 성공했다’고 체념하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적은 돈을 받으며 무제한 노동을 견디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이 있다.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94.4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하루 평균 12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3천989원에 불과했다.

청년유니온(위원장 이채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1.49시간

청년유니온이 6월5일부터 6월21일까지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25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94.05%가 여성이었고, 67.2%가 25세 이하였다. 평균연령은 26.3세였다.

이들은 실장 또는 팀장이라고 불리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밑에서 보조 역할로 일하는데,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스타일리스트와 일대일 고용관계를 맺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94.4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4대 사회보험에 모두 가입돼 있는 경우는 5.16%에 불과했다. 업계에서 근무한 경력은 18개월 미만이 51.18%로 장기간 근속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49시간으로 87.29%가 9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15시간 이상 24시간 미만’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도 16.1%나 됐다.

담당 연예인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업계 특성상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잔업도 빈번히 이뤄졌다. 응답자의 82.94%가 출근시간이 유동적이라고 답했다. 90.48%는 퇴근 후 잔업을 한다고 답했다.

평균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1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0.39%로 절반 이상이다. 응답자의 월 평균 임금은 97만2천400원이었다. 시간당 평균임금을 계산하면 3천989원에 불과했다. 48.02%가 식대를 지원받지 않고 있었으며,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퇴근할 때도 택시비를 받지 못한다고 답한 노동자가 33.33%였다.
 

정기훈 기자

“실장 강아지 수발 들어” 갑질에 눈물
“패션업계 도제시스템 바꿔야”


열악한 노동조건 외에도 부당한 대우로 속앓이를 해야 했다. 대여한 의상·액세서리를 분실하거나 손상시켰을 때 손해배상은 자비로 부담하는 경우가 69.84%였다. 서술형 문항인 ‘남기고 싶은 말’에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물건 분실이나 하자를 내 탓으로 돌려서 배상하라고 했다”거나 “제가 입는 속옷 색깔까지 참견했다” “실장 강아지 수발을 들기도 했다”는 ‘갑질’ 사례 답변이 이어졌다.

이채은 위원장은 “방송산업의 하도급계약 문제나 패션업계의 도제시스템 같은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며 “잘못된 관행 때문에 가슴 뛰는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노동자로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은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임금체불 사례자를 모아 집단 진정을 제기할 계획이다. 청년유니온 패션어시스턴트지부 설립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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