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왕규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광주지부)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8다 263519 판결

1. 사건의 개요 및 쟁점

가. 사건의 개요

원고들은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사를 고용해 월급을 지급하기로 하고 의사 명의로 병원을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4개월분 임금이 체불되자 퇴직한 후 사무장을 상대로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사무장인 J는 제약회사를 퇴사한 후 경매를 통해 부인 명의로 매수한 건물에서 의료시설을 갖추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 A를 고용한 다음 A명의로 K병원이라는 상호로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아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K병원의 총괄이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면서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고 지휘·감독했고 수익금을 관리하면서 A에게 매월 약정된 급여를 지급했다. 그러나 원고들이 위와 같이 소송을 제기하자 J는 근로계약서는 A명의로 작성됐고,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의사인 A라고 주장하며 임금지급 책임을 부인했다.

나.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① 원고들에 대해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를 사무장 J로 볼 수 있는지 ②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33조2항에 따라 사무장 J와 의사 A의 사무장 병원 운영계약을 무효로 볼 경우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로 정리할 수 있다.

2. 1심 및 항소심 판결 요지

1심(전주지법 2017. 11. 8. 선고 2016가단 22969 판결)과 항소심(전주지법 2018. 8. 16. 선고 2017나 13482 판결)은 사무장 J가 K병원의 실경영자로서 원고들에 대해 임금을 체불했다는 근로기준법 위반의 범죄사실로 기소돼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위 형사 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해 그 명의로 의료개설 신고를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손익이 의료인 아닌 사람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33조2항에 위반돼 무효라고 봤다. 또한 사무장 병원인 K병원의 개설·운영을 위해 의사인 A가 원고들과 체결한 근로계약에 따라 원고들에 대해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은 사무장 J가 아니라 A로 봤다. 의료기관 운영과 관련해 얻은 이익이나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사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J에 대한 원고들의 임금지급 청구를 배척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하지만 대상판결은 ①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를 사무장 J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과는 관계없이 실질에 있어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어떤 근로자에 대해 누가 임금·퇴직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K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사무장 J가 의사인 A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해당하고, 원고들은 형식적으로는 A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J가 K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원고들을 직접 채용하고 업무와 관련해 원고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감독하면서 직접 급여를 지급한 사정을 감안했다. 원고들과 J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봄이 타당한 바, J가 원고들에 대해 임금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② 강행규정인 의료법 33조2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원고들과의 근로계약에 따른 임금 및 퇴직금 지급 의무는 처음부터 J에게 귀속되는 것이지 K병원의 운영과 손익을 J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A와 J 사이의 약정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위 약정이 강행규정인 의료법 33조2항에 위반돼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J가 원고들에 대해 임금·퇴직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무장 J의 임금지급 책임을 배척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했다.

4. 대상판결의 의미

위와 같은 ‘사무장 병원’은 변호사 자격증 없는 자가 변호사를 고용해 사실상 대표 노릇을 하는 ‘사무장 펌’과 마찬가지로 현행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나 공공연히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상 사무장 병원이 문을 닫으면 사무장은 병원 근로자들의 임금 등에 대한 지급 책임을 모두 의사면허가 있는 병원장에게 떠넘긴 채 잠적한다. 병원장은 자신은 이름만 빌려줬을 뿐 병원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사무장에게 그 책임을 다시 전가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대해 기존 하급심들은 대부분 사무장 병원 운영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33조2항에 위반돼 무효로 판단했다. 의료기관 운영과 관련해 얻은 이익이나 취득한 재산,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사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무장의 임금 등 지급책임을 부정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해석은 오히려 사무장 병원의 운영에 대한 사무장의 위험부담을 감소시키는 것으로서 사무장 병원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대상판결은 근로계약에 따른 임금·퇴직금 지급 책임은 사무장에게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한 근로자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본 대상판결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것은 아니나 결국 사무장 병원에서 발생한 임금·퇴직금의 경우 사무장은 근로관계에 따른 실제 사용자로서, 병원장은 ‘의료기관 운영과 관련해 부담하게 된 채무는 의사에게 귀속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사실상 부진정 연대 책임을 질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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