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학섬유 생산의 ‘메카’ 인 울산 남구 화섬공단. 한여름 햇볕이 따가운 가운데 적막한 분위기가 감돈다. 공장 특유의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태광산업 대한화섬 고합 등 노조의 ‘연대파업’ 이 53일째 진행중인 주요 공장에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공장에서 뿜어 나오는 흰 연기도 없다.

기자가 3일 오후 공단을 찾았을 때 노조 조합원들이 정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태광산업 공장에는 기계들이 잔뜩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었다. 수영복 란제리 등을 만드는 고급 원사(原絲)인 스판덱스가 출하되지 못한 채 잔뜩 쌓여 있었다.

울산 주요 화섬업체가 가동되지 않는 것은 노사갈등 때문. 대규모 구조 조정과 설비의 해외이전 등을 추진하는 회사측에 맞서 노조가 연대파업에들어가면서 기계가 멈춰 섰다.

피해는 심상찮다. 하루치 손실은 태광산업이 계열사인 대한화섬을 포함해 47억원, 고합은 9억원에 이른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가동중단 후 지금까지 태광 및 대한화섬의 매출손실 총액은 2367억원이나 된다는 것.

태광은 외환위기 때도 섬유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낼만큼 탄탄한 기업. 그러나 흑자를 내는 데 크게 기여했던 스판덱스 부문이 업체간 과열경쟁으로 적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

태광은 영업이익이 99년 1925억원에서 2000년 100억원으로 급감했으며 올 1·4분기에는 188억원의 적자를 냈다. 태광과 대한화섬 경영진은 노후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남는 인력 507명을 정리하기로 했다. 오용일 태광산업 이사는 “구조조정 없이 이대로 가면 올 한해 14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송교선 노조위원장은 “부채비율이 32.8%인 태광 같은 견실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면 한국에서 남아 있을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중인 고합은 공장 일부 시설을 중국 칭다오(靑島)로 옮길 예정이었는데 유휴인력의 전환배치에 반대하며 노조가파업에 들어갔다. 이상균 경영지원팀 차장은 “노사가 합심해도 살아날까 말까 한데 파업이 겹치면서 채권단에서 섬유부문을 아예 정리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6월에 ‘공권력 투입’ 으로 파업이 끝난 효성의 경우 공장은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사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전경 1개 중대가 공장 출입구 4개를 ‘보호’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측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화섬업계는 △공급과잉에 따른 채산성 악화 △주요 수입국의 내수감소 △중국 대만 등의 증산 등으로 ‘내우외환’ 을 겪고 있다. 이미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대부분 제품의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고 있다.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제품의 수출단가는 95년에 비해 50%가까이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막대한 자금을 들인 장치산업의 현장이 이처럼 두 달 가까이 멈춰선 것은 이유야 어쨌든 한국경제의 회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노사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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