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그분들은 이만하면 선방한 거 아니냐는 집단 최면에 빠졌다.

정부가 6·17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현 정부 들어 21번째다. 이번엔 ‘갭투자’를 막으려고 전세자금 대출을 조이는 걸 들고 나왔다. 3억원 넘는 집을 살 때는 전세 대출을 회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시장은 이걸로 갭투자가 사라질까 반신반의한다. 이번 대책이 조정 대상 지역 69곳이 아니라 투기과열지구 48곳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서다. 69-48=21. 오히려 나머지 21곳으로 갭투자가 몰릴 수도 있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다음날인 18일자 보수신문들이 집중 포화를 쏟아부었다. 조선일보는 18일 1면에 ‘대치·잠실 집 사려면 구청장 허가 받아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발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듯 묘사했다. 중앙일보는 같은날 경제섹션 1면에 ‘대출 다 막으면 전세로만 살라는 건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는 투로 나왔다.

중앙일보는 이날 3면에도 ‘법인 명의 아파트 종부세 폭탄, 10억 집 127만원서 내년 3천420만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천만원짜리 승용차 한 대 살 때도 자동차세가 200만원가량인데, 그보다 100배 가치가 있는 10억원짜리 집을 갖고도 그동안 종부세를 127만원만 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그런데도 이런 것 다 무시하고 기사 제목에 ‘세금 폭탄’이란 단어부터 넣고 본다.

매일경제는 이날 2면에 ‘수도권에 대전·청주까지 규제 … 非규제 김포는 들썩’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조정대상지역이 25곳에서 69곳으로 늘어 사실상 수도권 전역이 규제 대상이 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경제는 ‘김포·파주·양평’ 등은 비규제지역이라고 살뜰하게 투자 정보를 알려 준다. 이들 신문은 집 없는 서민과 주거빈곤층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뭉칫돈을 챙겨 놓고 이 눈치 저 눈치만 보는 투기세력과 투기 예비세력만을 위한 족집게 과외선생처럼 군다. 이날 매일경제 4면에 실린 ‘부동산 전문가 5인 긴급진단’ 기사에 등장하는 분들은 너무도 자주 봐서 지겹기까지 하다. 그분들이 진정한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굴 위해 발언하는지는 알겠다.

동아일보는 이날 6면에 ‘갭투자 차단 중저가 아파트까지 확대 … 실수요자 피해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직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20·30대의 내 집 마련을 차단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청년층을 위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집 없는 20~30대 청년들의 꿈을 앗아 간다고 곡소리를 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3억원 이상 집을 살 수 있는 20·30대 청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것만 봐도 우린 언론이 상위 몇 퍼센트에 타깃을 맞추고 기사를 쓰는지 알 수 있다.

세계일보도 이날 6면 머리기사에 ‘실수요자 타격’이란 제목을 달아 “뒷북 대책에 집을 마련해야 하는 지역 주민만 대출 규제 등으로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보수언론의 지적에 공감 가는 부분도 있다. 이번 부동산대책이 주택시장의 최상위 포식자인 현금 부자는 건들지 못하고 서민들만 괴롭힌다는 지적엔 절반은 공감한다. 이곳저곳 눈치 보는 대책으론 집값을 잡기 힘든데도 법인 소유 종부세만 인상하겠다는 이번 대책은 여전히 최상위 포식자를 피해 갔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만하면 선방한 것 아니냐는 자위 속에 또 이렇게 어영부영 5년 임기가 채워지고 있다. 이건 분명 적대적 공생관계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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