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가 나는 이제 무섭다. 그의 선한 마음이 지나간 곳에 무수한 갈등만 남으니 말이다.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건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로라는 선의만 던져 놓은 인천공항은 3년 내내 노노 갈등의 전쟁터가 됐다. 공사 정규직 노동자들이 역차별이라며 반발했고, 사측은 직접고용과 자회사 고용을 두고 노동자들을 이간질했다. 이러한 노노 갈등은 다른 공공부문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말하자면 대통령 선의가 공공부문을 내전 상태로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갈등으로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대통령의 선의는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었을까. 대통령이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죽기 살기로 공공부문 정규직 취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성이 다른 일자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같은 중앙공공기관의 평균 임금은 노동자 전체 중위임금의 3배다. 공공부문 평균 임금도 중위임금의 2배나 된다. 고용안정성 지표인 평균 근속은 공공부문이 민간기업보다 3~4배 길다. 노조조직률 역시 공공부문은 60%가 넘지만, 민간은 10%가 되지 않는다. 격차 사회로 불리는 한국에서 공공부문 일자리는 모든 면에서 월등히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좋은 일자리가 한국 사회에서 나눌 수 있는 일자리, 다시 말해 보편화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취업자가 공공부문 평균 수준의 임금을 받으려면, 기업이윤 모두를 빼앗아 와도 모자라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공공부문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임금수준은 높고, 반대로 일자리 숫자는 적다. 특권적이란 의미다.

혹자는 생산성 높은 기업의 임금이 높은 것처럼 공공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은 시장경쟁이 없어 시장에서 평가받는 생산성을 가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높은 수익성은 한국의 유일무이한 국제공항 운영권을 정부가 독점적으로 줬기 때문이지 어떤 특출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공항을 통한 수출입과 여행이 증가한 덕에 수익성이 높아진 것이다. 공항운영 자체는 인천국제공항 발전의 아주 작은 부분만 차지한다. 다른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평가되는 생산성이 아니라, 독점력과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한다.

공공부문이 이렇게 독점과 지원을 보장받는 것은 그 역할의 특수성 때문이다. 마르크스 경제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부문의 기본적 역할은 시장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인 화폐와 노동력을 생산한다. 특정 기업이 독점할 경우 다른 기업의 이윤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을 공동의 비용으로 정부에 위탁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흔히 ‘공공성’이라 불리는 시민 모두를 위한 혜택이 증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에서 공공성은 부수적 효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공공성이 경제의 목적이 되는 체제가 자본주의일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공공부문이 시장의 민간기업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간단히 말해 주객이 전도된 것일 뿐이다. 또는 공공부문이 독점의 지대를 누린다는 방증이다. 간단한 사고 실험만 해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만약 시장에서 생산하는 역할보다 밖에서 그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시장에서 생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는 누가 키우냐”라는 옛 코미디 유행어 같은 상황이라 하겠다. 그래서 공공부문에 대한 보상은 사실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만큼만 주어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국민경제는 민간의 시장을 통해 성장하니 당연한 일이다. 시장경제이지만 나름 공평하다고 평가받는, 또는 공공성이 넓게 보장된다고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들을 한번 보자. 공공부문 임금이 절대 민간 평균을 크게 상회하지 않는다.

한국의 공공부문이 민간보다 월등히 좋은 일자리를 가지게 된 이유는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이 깊다. 민간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따라 간접고용·파견·특수고용이 급증했다. 더불어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영세자영업에 뛰어들며 저임금 일자리가 대거 증가했다. 자본과 정부는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로 내몰았다. 반면에 공공부문은 민영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라는 사용자 특성과 노조의 투쟁 덕에 그럭저럭 좋은 일자리를 지켜 냈다. 그리고 IMF 구조조정이 끝난 후 2000년대 내내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도 달성할 수 있었다. 공공부문은 이렇게 민간 부문과 동떨어진 경로로 성장해서 현재 독보적으로 좋은 일자리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선의가 놓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온전하게 이뤄지려면, 그 공공부문 정규직의 현 상태가 과연 우리 사회의 지향인지 따져 봤어야 했다. 보편적일 수 없는 것을 두고 보편적 해법을 제시하니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은 문 정부의 일반적 특성이기도 하다. 제약 조건은 설명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한 후에, 그 제약 조건 탓에 충돌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정책을 많이 추진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에 더 이상의 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공공 일자리 갈등을 해결하는 키는 다시 노조운동에 쥐어졌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노조의 오랜 요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 봤듯, 그 정규직이 한국 사회 평균과 동떨어져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역차별을 받았다는 청년들에게 도덕적 잣대로 돌을 던질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규직화를 바라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외면할 일도 아니다.

노조운동은 공공부문이 민간 평균으로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물론 민간 평균이 지금보다는 나아져야 하는 것도 함께 추구해야 할 바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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