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국회 앞은 오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이들로 번다하다.

장애인노조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작업 중 파쇄기에 끼여 숨진 지적장애인 노동자 고 김재순씨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사업주 구속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굴착기로 파쇄작업장을 정리하고 수지 파쇄기를 가동하는 일을 했던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점검 중에 폐기물이 걸린 것을 확인하고 제거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매일매일 누군가의 사망소식을 듣다 보니 너무 덤덤해진 탓일까. 김재순씨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장애인노조의 피켓이 외롭다.

김재순씨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취업이 쉽지 않다.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가 있다지만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여전히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다 고용부담금을 내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니 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장애인 보호 작업장이거나 혹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자리, 그리고 영세한 사업장이다.

김재순씨가 일하던 조선우드도 매우 영세한 곳이었다. 김재순씨는 능숙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일이 너무 힘들어서 14개월간 일하고 퇴사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악한 일자리에서, 위험한 일자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영세하고 열악한 일자리들이 안전의 사각지대가 된다. 하청노동자들이 누군가 죽어 간 자리에서 죽어 가듯이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도 그러하다.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의 죽음 전에도 2013년 성수역과 2015년 강남역에서 똑같은 죽음이 있었다.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의 죽음 이전에도 12명이 그 발전소에서 사망했다. 김재순씨가 일한 조선우드에서도 2014년 컨베이어 회전부품에 옷이 말려 들어가 노동자가 숨진 사고가 있었다. 비상정지 스위치도 가까이 있지 않고, 2인1조로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이렇게 하청노동자, 영세 사업장 노동자는 누군가가 죽어 간 자리에서 또다시 죽는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죽는 이유는 하나같이 죽음의 책임을 작업자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구의역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했을 때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고 과실 책임을 고인에게 돌리던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처럼, “가지 마라고 하는 곳에 가서 하지 마라는 일을 했다”면서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고인의 책임으로 떠넘긴 서부발전처럼, “술을 마셔서 추락했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진술 때문에 부검까지 가서 누명을 벗어야 했던 고 김태규 노동자 사례처럼, 조선우드는 사고 직후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며 김재순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다. 김재순씨는 시키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늘 같은 일을 했지만, 그 일 자체가 위험한 것이었다. 예측되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가까이 있어야 하고, 2인1조 작업을 해야 하지만 회사는 노동자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 있지만 고용노동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4년 한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기에 관리·감독을 제대로 해야 했다. 영세한 사업장이라 안전장치를 하기 어려울 테니 이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노동부는 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가족이 나섰다. 그동안 유가족과 동료들의 아픈 싸움으로 죽음의 진실이 드러나고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 조금씩 더 안전해지곤 했다. 구의역 김군 동료들의 힘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되돌렸으며, 김용균씨 유가족의 투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이끌어 냈다. 김태규씨 유가족의 지난한 노력으로 책임자를 구속시켰다. 김재순씨 죽음의 진상도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 힘으로 밝혀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직무유기를 반성하고 사장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장애인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죽어 간 곳에서 다시 죽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유가족과 시민들, 동료들에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책임마저 떠넘겨서는 안 된다.

그 의지를 담아 장애인노조 조합원들도 뜨거운 햇볕 아래 피켓을 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